현직 대통령 파면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사실상의 정권이양기에 접어든 한국.
두 달 뒤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지만, 민감해진 동북아 역학을 감안하면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셈법은 복잡할 수밖에 없는 모양새입니다.
조기대선 결과를 섣불리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기존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과 비교하면 일정 부분 변화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 3개국의 손익계산서가 엇갈릴 수 있는 대목입니다.
김열수 성신여대 교수는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만약 탄핵이 기각됐다면 국내 문제가 최우선 부각됐겠지만, 탄핵 인용으로 (국내 못지않게) 국외 이슈가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달갑지만은 않은 美…역사이슈 쟁점화 우려하는 日
탄핵 결정 소식을 접한 미국 정부의 첫 반응은 '한미동맹'에 방점이 찍혔습니다.
마크 토너 국무부 대변인대행은 연합뉴스에 보낸 논평을 통해 "우리는 한국민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미국은 한국민이 차기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더라도 생산적 관계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한미동맹은 지역 안보의 핵심"이라며 한반도 안보 공백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비롯한 한미동맹의 기조는 조기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유효하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론 대북 공조의 변화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는 표정입니다.
차기 지지율 1위 문재인 후보 진영이 남북 직접대화와 대북 온건 노선을 선호한다는 미 주류 언론의 분석에도 그런 시선이 짙게 깔렸습니다. 초강경 대북제재를 예고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박근혜 정부와 체결한 각종 합의의 운명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읽힙니다.
당장 한·일 위안부 합의가 1차 타깃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한·일 양국은 위안부 합의가 돌이킬 수 없이 완전히 해결될 것임을 선언했지만, 유력 차기 주자들이 대체로 부정적 기류여서 재협상론이 부각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국제적인 신뢰 손상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이 합의를 파기할 시나리오는 그 가능성이 작다는 게 현실적인 분석이지만, 한국 국민의 반일(反日) 감정과 맞물려 대선정국에서 쟁점화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위안부 소녀상 이슈, 독도 문제까지 큰 틀에서 '역사공방'으로 묶인다면 일본이 무게를 두는 한·미·일 대북 공조의 틀에도 균열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게 일본 측 우려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한일 관계의 험로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 코멘트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한국의 성실한 이행을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고차방정식 받아든 中…사드 때리기 수위조절?
최근 들어 한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중국의 셈법은 더욱 복잡합니다.
지금까지는 한미일 공조과 맞물린 사드 배치에 극력 반발하며 '약한 고리'인 '한국 때리기'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한반도 정세에 변화가 가해질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의 갈림길에 선 셈입니다.
중국청년망이 유력 차기주자 가운데 한 명만 사드 배치를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도 '은근한 기대감'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중국으로서는 주한미군의 전격적인 사드 포대 배치로 이미 허를 찔린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조기대선 정국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외교차관을 역임한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중국의 근본적인 우려는 미국이 구축하려는 미사일방어체계(MD)"라며 "한반도 사드배치 철회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미·일에 기울어진 한국의 무게중심이 차기 정부에서는 중국 쪽으로 이동하도록 끌어내는 방안을 고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분별한 사드 보복이 한국 내 대중(對中) 여론을 악화시켜 차기 정부의 활동 공간을 협소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중국에서는 고심할 대목입니다.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도 전날 한국 의원들과 회동에서 "사드 배치를 당장 취소해야 하지만 어렵다면 중단이라도 해서 한중간 협의할 공간이라도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국이 전략적인 선택지를 고심하면서 사드 보복의 수위조절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한국과 롯데 때리기에 앞장서온 중국 관영 매체들이 일제히 냉정과 자제를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포석과 무관치 않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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