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줄어들었다. 면세점 개점 전부터 100여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던 모습과 달리 7일 오전 10시30분 오픈 직전의 롯데면세점 앞은 한가했다. 불과 30명 남짓한 중국인 관광객들만 몰려있었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들른 롯데면세점 안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북적북적 발 디딜 틈이 없었던 1~2주 전과 달리 쇼핑하는데 여유로웠다. 마치 평일 백화점 매장의 한가로움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특정 명품 브랜드 매장에 길게 줄을 서 있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더욱 눈에 띄었다. 그 무리 중 익명을 요구한 20대 한 중국인은 "한국에 온 김에 평소 사려고했던 명품을 사가기 위해 왔다"며 "내 주변에는 여전히 한국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와 관련해선 "어떤 얘기도 하기 싫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이미 한중 관계가 사드 배치로 인해 악화된 게 사실이고 중국 정부가 민감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유를 들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날로 거세지면서 국내 면세점과 화장품 등 중국인 관광객들의 의존도가 높은 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장 명품 등의 매출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몽니' 속 향후 별 뾰족한 수가 없어 한숨만 늘고 있다.
7일 면세점 업계에 따르면 사드 부지 제공의 주체로 중국 당국의 보복의 대상이 된 롯데면세점의 매출은 현재까지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월 매출은 전년대비 비슷한 수준이라는 게 롯데면세점 측 설명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물론 지난 1~2주 사이 중국인 관광객 수가 줄어들었지만 대신 쇼핑 시간이 길어지면서 매출이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았다"며 "여전히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 매장에선 대기줄을 서야지만 입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라·신세계·두산 등의 면세점에서도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여파로 최근 매출 감소가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오히려 롯데면세점을 기피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발걸음을 돌리면서 소폭 매출이 늘어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드 보복은 '악재 중 악재'라는 데 업계 이견은 없었다. 특히 중국 당국이 오는 15일부터 베이징 주요 여행사를 통한 한국 관광상품 판매를 전면 중단하라고 지시한 만큼 이후 단체 관광객들의 감소에 따른 매출 감소는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시내 면세점 한 관계자는 "유커(중국인 단체 관광객)에서 싼커(중국인 개별 관광객)로 국내 관광 오는 중국인들 유형이 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유커 매출 비중은 높은 편"이라며 "지난해부터 감소하기 시작한 유커들이 더욱 줄어든다는 생각을 하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면세점 관계자은 "중국 당국이 한국 관광상품 판매 규제를 하기 시작하는 15일 이후 상황을 잘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한중 관계 악화에도 중국 관광객을 포기할 순 없기 때문에 악재에도 버틸 때까지 버텨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면세점 업체보다 규모가 작은 화장품 로드숍들은 더욱 걱정이 컸다. 불과 일주일 사이 중국인 손님들이 반 이상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만큼 그 체감도가 더 컸다.
실제 이날 중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나던 명동 화장품 로드숍 거리에서는 좀처럼 중국인 손님들을 붙잡기 위한 호객 행위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이니스프리 매장은 관광객들의 캐리어를 무료로 보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중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캐리어 보관함의 점유율은 10~20%대에 불과했다.
한 로드숍 화장품 업체 직원은 "호객 행위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말 며칠 사이 중국인 손님들이 보이지 않는다"며 "지난 주말에도 매장에 손님 수보다 직원들 수가 더 많아 (직원들이) 멀뚱멀뚱 서 있어야 해 눈치가 보일 정도다"고 말했다.
또 다른 로드숍 화장품 업체 측은 "같이 일하는 직원들 중에 중국인들이 많은데 요즘 같아선 어떤 얘기도 나누지 않는다"며 "중국인 직원들을 대할 때도, 중국인 관광객들을 대할 때도 사드 불똥이 언제 어떻게 튈지 몰라 조심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에서도 현재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국 여행사를 통한 한국 관광상품 판매가 금지되는 15일 이후의 상황.
한 화장품 업체 사장은 "현지 직원들을 통해 중국 내부 상황이나 분위기 등을 전해듣고는 있지만 가짜뉴스도 많아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며 "하지만 우리 정부 역시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선 별 대책이 없는 것 같아 더욱 답답하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 배윤경 기자 /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