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집을 나왔고, 둘 다 서울에 있었고, 둘 다 아는 사람이 서로밖에 없었다. 지낼 곳이 없는 한 명을 위해 다른 한 명이 악기를 팔아 월세방 보증금을 대줬다. 실명인 신현희(24)씨와 예명을 사용하는 김루트(나이 불명)씨는 그렇게 혼성 어쿠스틱 인디밴드 '신현희와김루트'를 결성해 2014년 첫 디지털 싱글 앨범을 냈다. 대구 출신으로 동성로에서 각자 거리 공연을 하며 친분을 쌓은 둘이 지난 2012년, 2개월의 사이를 두고 각자 가출을 감행한지 2년 만이다.
숫자 '2'는 그들에게 특별한 숫자가 된 듯 보인다. 둘이 팀을 만들어 2년 만에 첫 앨범을 냈고, 2015년 2월 발매한 미니앨범 타이틀곡 '오빠야'가 2년 만인 지금 그야말로 '대박'을 냈다. 유명 BJ(개인방송인)가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커버 영상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화제가 된 것이 시작이었다. 일반인부터 아이돌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커버 영상을 SNS에 올리면서 노래가 음원 실시간 차트 100위 안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순식간에 치고올라가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홍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의 2년 전 곡이 국내 음원 정상에 오른 것이다. 노래는 지금도 멜론 등 음원사이트에서 10위 안팎의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문화인 건물에서 만난 신현희와김루트는 인기를 실감하냐는 질문에 "규칙적으로 (식사를) 챙겨먹는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답했다.
김씨는 "오빠야란 곡이 차트 역주행을 시작했을 때도 닭꼬치를 팔고 있었다"면서 "돈이 정말 없었고 배가 고플 때도 많았다. 지금은 활동하면서 시간 맞춰 밥을 먹는다. 끼니를 챙겨준다. 성공한 거 같다"며 웃었다.
신씨 역시 "방송 출연하고 기사도 나고 하니까 이모들이 엄마에게 '현희 돈 많이 벌겠다'고 했다. 그런 말 들어도 되나.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인디 차트도 아니고 전체 차트라니…내 영역이 아닌 일(상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SNS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인디밴드 같지만 사실 신현희와김루트는 정규앨범 1장과 싱글 4장, 다수의 홍대 공연으로 입지를 탄탄하게 쌓아왔던 그룹이다. 멜론 파트너센터를 이용해 데뷔 때부터 팬들과 꾸준히 소통해오기도 했다. 차트 역주행을 시작했을 때 주변에 이를 적극 알리며 조력자 역할을 자처한 것도 이 골수 팬들이다. '나만 아는 밴드'를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만들어낸 셈이다. 이들은 신현희와김루트를 '정말 행복해보이는 밴드', '인디씬에서 잔뼈가 굵은 실력파'로 소개한다.
튀는 무대 의상만큼 발랄해만 보이는 이들이지만 신씨와 김씨는 모두 집을 나온 아픔이 있다.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신씨는 "이제 부모님이 최고의 지원자"라고 설명했다.
신씨는 "엄마가 집에서 방송을 보다 나와 차 안에서 전화를 거셨다. 평소 반말도 해본 적 없는 강한 엄마, 표현에 인색한 엄마였는데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라고 하셨다. 그 때 모녀가 정말 펑펑 울었다"며 "지금도 엄마는 이모들과 모여 방송을 챙겨 보신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국 지혜롭게 주변을 설득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할 자기 몫이라고 본다"며 "성과물까진 아니더라도 노력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보여드리고 먼저 인정받아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힘들었다. 음악은 결국 전달력이 중요한 만큼 주변의 동의를 얻는 과정도 스스로 넘어야 할 관문"이라고 덧붙였다.
신현희와김루트는 어쿠스틱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음악 스타일은 '설명하기 난해하다'고 할 정도로 거침이 없고 다양하다. 펑키, 블루스, 발라드 등 앨범마다 수록곡이 제 색깔을 분명하게 갖고 있다.
김씨는 "오빠야로 떴으니 다음 앨범도 어쿠스틱풍이 아니겠냐는 예상이 많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은 그 나이에 겪는 걸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음악"이라며 "지금이라면 오빠야란 곡을 못 만들었을 거다. 그런 귀여운 감성이 많이 줄었다(웃음). 항상 지금의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음악, 팬들과 함께 성숙하고 나이 들어가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신씨는 "신현희와김루트는 '흰색같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며 "흰색은 빨간색이랑 섞으면 분홍색이, 파란색과 섞으면 하늘색이 되는 것처럼 뭐든 우리 식으로 보여주고 해석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신현희와김루트는 하고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해야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춘들에 대한 조언도 조심스럽게 내놨다.
신씨는 "어머니가 노래를 잘 하신다. 어렸을 때 가수를 하고 싶었지만 외할아버지가 강하게 반대하셔서 결국 꿈을 접었는데 요새 라디오 노래자랑에 나가서 김치냉장고도 타오고, 판소리도 배우고, 봉사활동으로 노래도 가르치신다"면서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건 언젠간 하게 된다. 그러므로 할거면 당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행복하다. 조언할 만한 입장은 아니지만, 오히려 같이 아파하고 성장해나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김씨는 "대학에서 교수님이 '잘해도 그만두면 끝'이라면서 끝까지 남는 사람이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라며 "쉬운 말일 수 있지만 어중간해도 끝까지 살아남으면 그게 진짜라고 생각한다. 지난달에도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고 앞으로도 해야할 수 있다고 각오하고 있다. 하지만 끝까지 음악을 할 거다. 하고 싶은 걸 해야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 / 이경서 인턴기자, 사진 제공 = 문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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