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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감사委 유명무실…10명중 8명이 `회계 문맹`
입력 2017-03-01 18:11  | 수정 2017-03-01 20:16
국내 상장사 감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감사위원들 중 회계 전문가 비율이 터무니없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들의 회계부정 가능성을 키우는 핵심 요인이다. 기업의 회계를 1차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회사 내부 감사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하면 제2, 제3의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정치권이 추진 중인 감사위원 분리 선임 제도를 도입하면 회계 전문가가 부족한 국내 기업들이 외국계 투기자본의 경영 개입에 휘둘릴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1일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감사위원회가 설치된 국내 상장사 397곳의 감사위원회 구성원 출신을 전수조사한 결과 전체 2721명 가운데 회계사 출신은 274명으로 전체의 10%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회계·경영을 전공한 교수,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감안해도 관련 전문가는 19%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법조인(273명), 관료(327명), 교수(413명), 정치인·언론인(57명) 출신은 전체의 40%에 달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감사위원의 법적인 권한과 책임이 명확함에도 본인의 역할조차 모르고 선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대로 감사위원회를 운영하면 한국 기업들의 회계부정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자산 2조원 미만의 기업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한국은 감사위원 중 1명 이상은 회계 전문가를 선임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꼭 공인회계사일 필요는 없다. 이에 비해 미국은 감사위원들에게 회계·재무정보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인 '파이낸셜 리터러시(fiancial literacy)'를 반드시 갖추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감사위원 상당수는 CEO와 CFO 출신이 맡고 있다.
삼정KPMG에 따르면 미국 포천 100대 기업의 감사위원회 주요 구성원인 사외이사 중 회계 전문가를 포함한 재계 출신은 78%에 달한다. 관료나 학계 출신은 17%에 그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회계 사기 10건 중 무려 9건이 감사위원회와 같은 기업 내부 통제기구에 의해 적발됐다. 뒤집어 해석하면 외부 감사인이 회계 사기를 걸러낸 비율은 10%도 채 안 된다는 얘기다.
외부 감사인이 아무리 엄격하게 감사를 진행해도 기업에서 의도적으로 회계 조작에 나선다면 제2, 제3의 대우조선해양 분식 스캔들을 막기 힘들 것이란 경계감이 커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최근 수조 원대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인 대우조선해양에는 감사위원회를 포함해 회계감독 책임이 있는 내부 조직에 회계 전문가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성규 한국회계학회장은 "감사위원회는 회사 경영진이 제시한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 업무를 수행하며 그 결과가 담긴 감사보고서를 자기 책임 아래 최종적으로 주주총회에 제출해야 하므로 전문성이 중요하다"며 "감사위원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보장돼야 감사 기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감사에 대한 권한과 정보 접근성을 보장받는 내부 감사인보다 이행 보조자인 외부 감사인이 더 엄중한 처벌을 받는 것은 비례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안진회계법인이 소수의 회계사 잘못으로 문을 닫으면 2000명이 넘는 직원의 직업 선택권도 침해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대기 기자 / 전경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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