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김한솔(22)이 아닌 김솔희(18)다. 말레이시아 현지에는 김정남의 둘째 부인 이혜경의 막내 딸 김솔희가 피살당한 아버지의 시신 인도를 위해 곧 말레이시아를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아직까지도 확인되지 않는 '김한솔 입국설'에 지칠대로 지친 현지 기자들은 김솔희라는 새로운 뉴스에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다. 김한솔 퍼티그(fatigue·피로) 현상 속에 김솔희 입국설이 자생적으로 퍼져가는 모습이다.
김솔희 입국설은 지난 20일 전 세계 언론이 확정적으로 보도했던 '김한솔 입국설'과 23일 현지 경찰이 김한솔의 DNA채취를 위해 마카오로 출국했다는 '마카오 특파설'에 이어, 김정남 피살 사건에서 뻗어 나온 세번째 소문이다. 앞선 두 소문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돼 부인을 당했다.
김솔희 입국설의 시발점은 지난 23일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경찰 부청장의 발언을 인용한 현지 언론 보도였다. 말레이시아 일간지 베리타 하리안(Berita Harian) 은 이날 이브라힘 부청장이 한 지방 행사에서 자사 기자에게 "김한솔이 아니더라도 김정남의 유가족이나 그의 가까운 친척이 말레이시아를 하루 이틀 내로 방문할 것"이라 말했다고 보도했다.
관련 보도가 나간 후 말레이시아 경찰청은 부청장의 발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이를 직접 들었다는 타사 기자들도 찾기 어려웠다. 중요 사건의 정보를 강력히 통제하는 말레이시아 경찰의 속성상 경찰 부청장이 한 지방 행사에서 일부 기자에게 이런 발언을 했을 가능성은 사실 낮다는 관측이다. 현지 영문 유력 매체의 한 기자는 당일 "그가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나도 정말 헷갈린다"고 전했다.
하지만 발언이 있은 다음날 현지 유력 매체들은 베리타 하리안의 기사를 인용하며 김한솔이 아닌 김정남의 또다른 유가족이 오늘(25일) 말레이시아에 입국할 가능성이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 이후 '김솔희 입국설'은 서서히 바람을 타며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 보도 역시 현지를 떠들썩하게 했던 앞선 두 소문과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에 의해 강력히 부인당했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지난 24일 하루 일정으로 메카 소순례를 떠나기 전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부청장의 발언은 잘못 인용된 것이다. 아직까지 김철(김정남의 여권 이름) 유가족 중 말레이시아 입국을 타진한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그는 김정남 피살 후 현지를 떠도는 각종 소문에 대해서도 강력 부인했다. 바카르 청장은 "김한솔 DNA 채취를 위해 마카오에 경찰을 보낸 적도 없고, 김정남 유가족 입국과 관련해 중국 대사관과 논의한 것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문을 기사로 쓰지 말라. 소문을 만드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기자들에게 훈계조로 말했다.
바카르 총장의 확신에 찬 공개 발언이 나온 후로는 김솔희 입국설의 생명력은 꺼져가는 분위기다. 관련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복수의 현지 매체 기자는 "사실 김정은의 유가족이 말레이시아에 왔거나 곧 올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른 언론사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각종 소문마저 기사화하는 상황 속에 부청장의 발언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김한솔 입국설부터 마카오 특파설까지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기사를 써야 하는 상황에 지친다"고 토로했다.
새로운 뉴스와 특종을 갈망하지만 김정남 유가족 입국을 둘러싼 소문 외에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정보를 강력히 통제하고 있어 현지 기자들은 김솔희 입국설 등 각종 '설'에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브라힘 부청장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김솔희는 늦어도 오늘 말레이시아에 입국한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김한솔과 달리 김솔희는 언론에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녀가 입국한다 해도 말레이시아 당국이 확인하기 전까지 그녀가 실제로 입국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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