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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금융감독원에 `백기투항`한 교보생명을 보며…
입력 2017-02-24 17:23  | 수정 2017-02-24 19:02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금융감독원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제재 결정을 앞두고 교보생명이 막판 백기 투항했다. 이로 인해 오너인 신창재 회장의 징계수위가 당초 예상된 중징계에서 '주의적 경고(경징계)'로 바뀌면서 생명보험사 빅3(삼성·한화·교보생명) 가운데 유일하게 경영권을 유지하게 됐다.
신 회장 연임과 맞바꾼 자살보험금 672억원 지급결정은 금감원의 제재심의 진행을 불과 2~3시간 앞두고 내린 황급한 결정이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융감독당국이 중징계 결정에 앞서 사전 언질을 주고, 이후에 교보생명이 서둘러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마저 흘러 나온다.
교보생명은 이번 결정 이후 "보험산업의 신뢰와 소비자 권익을 지키기 위한 대승적 차원의 결정"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보험산업의 신뢰와 소비자 권익을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 '헛된 메아리'로 들리는 이유는 왜 일까.
무엇보다 시점의 문제일 것이다. 보험의 신뢰와 소비자 권익을 우선 시 했다면 진작에 '애타게 기다리는'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했어야 옳다. 만약 그동안의 신념이 삼성생명이나 한화생명처럼 청구권 소멸시효(2년) 지난 건에 대한 보험금 지급이 '부당하거나' 보험산업에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신념에 의한 것이었다면 끝까지 밀고 갔어야 했다는 얘기다.

또한 이번 결정은 신창재 회장의 평소 철학과는 극명한 온도차가 존재한다. 그동안 신 회장은 인간중심 경영에 앞장서는 '착한 CEO'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지난 1월 신년사에서도 "고객 눈높이에서 고객이 공감하고, 만족할 수 있도록 반걸음 앞서가는 혁신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살보험금 지급 결정에 있어서는 '사람'보다는 '산술적 계산'에 치우쳤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성생명, 한화생명의 전문경영인 체제와 달리 교보생명은 지분 33.78%를 보유한 신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금감원으로부터 임직원 문책경고를 받으면 3년간, 해임권고를 받으면 5년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일할 수 없다. 즉 다음달 대표이사 임기가 끝나는 신 회장이 중징계를 받았다면 연임하지 못하고 3~5년간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하는 것. 신 회장이 아버지 신용호 선대 회장이 1958년 창업한 회사를 1996년 물려받은 뒤 첫 경영공백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던 셈이다.
금감원이 중징계 카드를 꺼내려하자 이사회를 통해 자살보험금에 대한 입장을 극적으로 바꾼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그동안 교보생명은 '자살을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등의 명분을 내세우며 소비자와의 약속을 줄곧 외면해왔다.
교보생명은 미지급 청구 건수 1858건에 대한 '모든 건'을 지급하겠다고 약속 했으나 사실 '전액' 지급은 아니다. 대법원에서 2007년 자살보험금지급 판결 이전에 청구한 900여 건에 대해서는 이자를 제한 원금만 지급할 방침이다. 보험상품은 지연이자 지급여부에 따라 최종 지급하는 보험금액이 크게 달라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교보생명은 전체 미지급 자살보험금 1143억원중 672억원인 절반정도만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경영권을 유지한 셈이다.
이와 관련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교보생명의 결정은 감독당국의 징계를 피하려고 막판에 내린 꼼수에 불과하다"면서 "특히,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한 대승적 결정이라고 포장해서 발표한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치졸한 행위'"라고 꼬집었다.
[디지털뉴스국 김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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