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흐엉은 단순·순수…北에 이용당했을 것"
입력 2017-02-24 13:51  | 수정 2017-02-25 15:38
김정남 살해범 도안 티 흐엉과 한국인 친구 K씨가 베트남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찍은 사진 [사진제공=김정남 살해범 도안 티 흐엉 친구 K씨]

외국 물류회사의 베트남 호치민 지점에서 근무한 30대 초반 한국 남성 K씨는 작년 6월 현지 채팅앱 비톡(Beetalk)을 통해 한 현지 여성을 알게 됐다. 비톡은 동남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온라인 메신저 중 하나로 '데이트앱'으로도 불린다. K씨는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 이 여성과 자연스럽게 하노이·호치민 등에서 만남을 이어갔다. 작년 7월 이후엔 주로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지난 12월 귀국한 K씨는 최근 TV 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다. 지난 14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김정남을 암살한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29)이 바로 그녀인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24일 도안 티 흐엉과 친구 관계라고 밝힌 한국인 남성 K씨는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평소 도안 티흐엉을 '루비'라는 예명으로만 불렀다"며 "주로 밥과 술을 같이 먹는 사이였고 함께 노래방도 가는 등 여가를 즐겼다"고 말했다. 루비는 도안 티흐엉의 예명으로 알려졌으며, 도안 티 흐엉의 것으로 알려진 두 페이스북 계정 중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다. K씨는 호치민 지점에 일하면서 6~7월 호치민과 하노이를 오가며 도안 티 흐엉을 5~6차례 만났다고 밝혔다.
K씨는 흐엉을 "전형적인 단순한 베트남 소녀"라며 "매우 순수한 성격의 소유자" 라고 표현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흐엉이 '간첩' 또는 '고도의 훈련을 받은 요원'으로 묘사되는데 K 씨가 본 흐엉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K씨는 "그 친구 성격이 치밀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고, 생각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었다"며 "굳이 말하자면 조금 단순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남의 말을 쉽게 믿는 편이어서 본인이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될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이용당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K씨 주장이다.

그는 '루비'라는 계정명의 페이스북외에 'Linh Ngoc Vu'이란 계정명으로 새로 드러난 페이스북 역시 흐엉의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Ruby Ruby(루비 루비)'계정은 최근에 새로 만든 것이고, Linh Ngoc Vu 계정이 오래 전 흐엉이 사용하던 페이스북 계정"이라고 설명했다.
K씨는 지난해 12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흐엉과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 받았으나 한국에서 흐엉을 만난 적은 없다고 말했다.
K씨는 흐엉이 아이돌 그룹 빅뱅 태양의 열렬한 팬이라고 했다. 흐엉와 하노이에서 자주 노래방에 갔다는 김씨는 "루비가 태양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서 몇번 불러준 적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루비가 아주 좋아했다"고 말했다. 흐엉의 페이스북에도 태양의 사진과 함께 '내 남자는 너무 바빠요(My boy is so busy)'라는 게시글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최근 한국 언론엔 흐엉이 작년 11월 제주를 방문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그녀의 페북에도 작년 11월 제주 해변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함께 'I LoveJeju Island(제주도가 너무 좋아)'라는 글이 올라왔다. K씨는 "당시 제주도를 여행하기 전 굉장히 들떠있는 듯한 말투로 나한테 엄청 자랑을 했다"고 전했다.
흐엉은 한국말을 잘하진 못하지만 '오빠', '고마워'등 간단한 단어를 10개 정도 알고 있었고, K씨와 만나면서도 자주 사용했다. 흐엉의 페이스북 게시물 곳곳에는 'Gomawa(고마워)', 'oppa(오빠)' 등 영어로 쓴 한글 단어가 보인다.
K씨가 알고 있는 흐엉의 직업은 프리랜서 모델이다. K씨는 "본래 호치민에 거주했고 하노이에 일이 있을 때 종종 왔고 레이싱 모델 일도 종종 했다"고 말했다. K씨는 "흐엉이 특별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으나 "(모델) 일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에 따르면 흐엉은 당시 김정남 암살에 대해 "돈을 받고 장난 동영상을 찍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Linh Ngoc Vu 계정에는 총 124명의 친구가 등록돼있다. 이중 절반 이상은 한국인이다. 이 계정을 '팔로우'하는 사람들은 229명이었다. 50여장의 자신의 사진도 게재돼 있는데, 대부분은 화장을 짙게 하고 한껏 멋을 부린 셀카(자기 모습을 스스로 촬영) 사진들이다.
흐엉이 예명(Ruby Ruby)과 가명(Linh Ngoc Vu)으로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해놓은 것에 대해 김씨는 "베트남 사람들은 원래 SNS 본인의 실제 신상을 잘 기록하지 않는다"라며 "루비(흐엉)의 다른 페이스북 계정에 ''하버드대학' 출신이라고 기재돼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계정은 출신과 거주지가 모두 서울로 기재돼 있기도 하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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