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동탄 화재 참사에도 "소방서 싫다"는 주민들
입력 2017-02-14 15:59  | 수정 2017-02-15 16:08

4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 이후 고층 빌딩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지만 서울에도 아직도 구 내에 소방서가 없는 안전사각지대가 있다. 경기도와 서울 남서부를 잇는 '관문' 같은 입지의 금천구다.
이 지역에는 최근 고층빌딩이 속속 들어서자 소방서 건립을 추진 중이지만 주민 반발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낙후된 지역이 막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혐오시설'인 소방서가 들어서면 소음공해만 일으키고 집값 등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는 게 이유다.
14일 금천구청과 지역민들에 따르면 최근 금천구 독산동 '말미고개' 인근 시흥대로에는 소방서 유치를 반대하는 '근조 현수막'이 내걸리고 주민자치위원회와 통장협의회 등이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다. 또 금천구청에는 소방서 건립에 반대하는 민원이 속속 접수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이 일대가 소방서 부지로 최종 선정된 후 구청이 지난달 주민설명회까지 개최하자 저지에 나선 것이다.
현재 이미 소방서 설립에 착수한 성동구를 제외하면 서울 25개 자치구 중 소방서가 없는 곳은 금천구가 유일하다.

해당 현수막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된 후 "소방서까지 반대하는 건 지나친 지역이기주의"는 네티즌 비난이 이어졌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사이렌 소리 등 소음공해'와 '낙후 지역에 대한 차별'이다. 시흥대로 인근에서 만난 주민 고모씨(58)는 "가뜩이나 대로변에 소음이 장난이 아닌데 매일 사이렌 소리 등이 울릴게 뻔한데 왜 하필 우리 동네냐"며 "이미 독산동에 소방서가 있는 것으로 아는 데 왜 또 짓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말하는 곳은 소방서가 아니다. 구로소방서 산하의 소규모 119안전센터가 있을 뿐이다. 규모가 작은 탓에 펌프차, 물탱크차, 구급차 등 소규모 장비만 있을 뿐 고가 사다리차, 굴절사다리차 등 고층빌딩 화재나 골목이 비좁은 시장 화재를 진압할 장비는 전무하다.
반면 금천구 독산동 일대에는 남문시장·독산동 우시장 등 크고 작은 시장이 여러 개 있고 고층빌딩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실제로 소방서 유치 예정지 건너편에 35층 규모 '롯데캐슬골드파크'가 지난해 11월말 완공됐고 2018년에는 최고 47층 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소방 관계자는 "만약 이런 곳에 대형화재가 발생하면 구로에 있는 공단119안전센터에서 지원 나가는 데 통상 15분 내외가 걸리게 된다"며 "화재 골든타임인 5~10분 사이를 훌쩍 넘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난대비 시설인 소방서가 '혐오시설' 취급받는 건 안타깝지만 무조건 '지역이기주의'로 몰아세워선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금천구를 비롯해 소방서 부지예정지인 독산2동 일대가 상대적으로 늦게 개발된 만큼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독산동 일대엔 여전히 저층 빌라와 연립주택 등이 난립해 있다. 인근 'ㅇ'부동산 관계자는 "2008년 인근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겨우 금천구청이 신청사를 짓고 아파트와 빌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금천구 아파트값은 올해 1월 기준 전용면적 1㎡ 당 평균 429만원으로 서울 25개 구(區) 중 가장 낮다.
서울시는 건립강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해당 부지가 왕복 12차선인 시흥대로를 접한 교통 요충지로 재난 발생시 금천구 전 지역에 5분 내에 도착할 수 있어 '골든타임'을 사수하기 위한 최적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추진과정에서 설명회·인센티브 제시 등을 통한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많다. 금천구가 소방서 건립을 추진한 것은 이미 2년 전인데 일반 주민을 상대로 설명회를 연 것은 올 1월이 처음이었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기반시설 건립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전환도 필요하지만 '공익'을 이유로 주민재산권 희생을 강요하던 시대도 지났다"며 "자치단체장 등이 필요하면 주민들을 직접 설득하고 인센티브 제시 등 소통을 해야 갈등도 줄고 시설 건립 효과도 최대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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