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찰신고 두시간만에 반복된 데이트폭력, 결국 살인으로…지난해 8367건 입건
입력 2017-01-19 15:07  | 수정 2017-01-20 15:08
계속 증가하는 연인간 데이트폭력. 단위=건수, 2016년은 2월 3일~12월 31일까지. [자료출처 = 경찰청],

지난 9일 이모(35·여)씨가 숨진 채 발견된 건 그녀가 전 남자친구이자 동거인이었던 강모(33)씨를 경찰에 신고한 지 3시간만이었다.
그날 오후 2시 26분께 강씨는 헤어진 이씨를 붙잡기 위해 그녀가 사는 서울 논현동의 한 빌라를 찾았지만, 다툼 끝에 이씨는 강씨를 무단침입으로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이 강씨를 경찰서로 연행했다.
경찰은 그가 이씨와 1년 가까이 동거한 연인인 사실을 확인하고 3시 40분께 그를 풀어줬다. 피해 여성에게는 "강씨를 만나지 말고 현관 비밀번호도 바꾸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강씨는 풀려난 지 두 시간만에 다시 이씨의 집을 찾았다. 이씨의 신고로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는 사실에 화가 난 강씨는 '나쁜 마음'을 먹고 말았다.

이날 오후 5시 30분 강씨는 이씨의 빌라 지하 주차장에서 그녀를 불러냈다. "다시 만나자"는 강씨의 제안을 이씨가 거절하자 미리 준비할 칼로 이씨를 위협한 뒤 주먹과 발로 마구 구타했다. 이씨가 시멘트 바닥에 쓰러지자 머리를 수차례 발로 짓밟기도 했다.
이씨는 두개골이 완전히 골절될 때까지 폭행을 당했다. 주차장 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강씨가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간 뒤 주민의 신고로 이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범행 이후 도주한 강씨는 결국 이튿날인 10일 새벽 대구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19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헤어진 여자친구를 주먹과 발로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강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조사 결과 범행 당시 강씨는 술에 취해있지 않은 상태에서 전 여자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현장 인근 폐쇄회로화면(CCTV)에는 강씨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무렇지 않은 듯 느린 걸음으로 주차장 밖을 나서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사건 이후 경찰이 여성의 신고에 부실하게 대응해 사고를 키웠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씨가 강씨에게 폭행을 당하는 것을 이웃들이 자주 목격할 정도로 강씨의 데이트폭력은 상습적이었지만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둘이 연인 관계로 1년간 동거를 한 사실이 있고, 다툼은 남녀간 사생활 영역이기 때문에, 강씨를 강제로 붙잡아둘 명분이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데이트 폭력은 연인간 사생활과 범죄 사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서로 믿고 의지하던 연인 간 사소한 다툼이 선을 넘을 때 순식간에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고 만다.
단순한 연인간 다툼 수준을 넘은 '데이트 폭력'은 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지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 집중 단속·수사를 진행한 결과 9364건 신고를 접수해 이 중 8367명을 형사 입건했다. 데이트 폭력 형사 입건 사례는 지난 2012년(7584건)부터 지난 2015년(7692건)까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는 주로 20대~30대 남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피해자는 80% 이상이 여성이다. 피해 사례가운데는 폭행이 60% 이상으로 가장 많다.스토킹과 감금·협박, 성폭력,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경찰은 연인간 폭력이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자 지난해 2월 데이트폭력 사건 전문 수사체계 구축을 위해 전국 경찰서에 태스크포스(TF)도 만들었다. 연인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고 재발을 방지를 위해서다.
국회에서도 스토킹으로 고통받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접근금지 명령 등 피해자보호를 강화하는 이른바 '데이트폭력 방지법' 발의를 앞두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연인 간이라도 폭력이나 학대 등은 사랑이나 사생활에 포함될 수 없다"며 "데이트 폭력이 발생했다면 경찰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태욱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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