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반기문 귀국 D-2, 潘風 불까 아니면 半風만 불까
입력 2017-01-10 16:38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한국 땅을 밟는다. 야권 주자들이 저만큼 앞서 달리는 상황에서 반 전 총장의 귀국이 '반풍(潘風)'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절반의 바람(半風)'에 그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뚜렷한 보수 진영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반 전 총장은 야권으로 기울어 있는 대선 지형을 수평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다만 합종연횡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조직화된 정치 세력없이 전장에 나서는 '단기필마'라는 한계가 있다.
◆"경제는 중도, 안보는 보수" 전략
정치 전문가들은 정치 경험이 없는 반 전 총장이 빠른 시일 안에 대선 레이스에 연착륙하려면 이른바 '포지셔닝(위치선정) 전략'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수 진영의 유력한 대안이긴 하지만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함몰될 경우 외연확장에 불리하다는 얘기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10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보수에게 반기문 외에 별다른 답이 없다. 일단 보수표는 잡아둔 것이니 산토끼를 잡으러 가야 한다"며 "안보는 보수 쪽이지만 경제는 진보 성향인 중도 표가 반 전 총장이 잡아야 할 산토끼"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반 전 총장은 한반도 사드 배치와 개성공단 폐쇄 같은 안보 이슈에 대해 기존의 외교적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정권에서 사드 배치를 재검토하고, 개성공단도 재가동하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각을 세우며 안보 이슈에서 보수 선명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미국에서 반 전 총장을 만난 충청권 의원들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외교·안보 이슈에 비교적 분명하게 본인의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드배치와 개성공단 폐쇄를 뒤집자는 야권 주장에 대해 반 전 총장은 "양국 정부가 결정한 사안을 뒤집을 수가 있겠냐"며 "유엔을 중심으로 전세계 국가들이 북핵 제제에 대해 뜻을 모으고 있지 않느냐"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충청 출신의 한 의원은 "평생을 외교 관료로 살아온 반 전 총장은 정권 교체로 인해 한 나라의 외교정책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적어도 외교안보 면에서는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보수적 색채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정책 방향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반기문 캠프는 일단 일자리 창출을 중심축으로 한 '포용적 성장'을 키워드로 내세우는 방안을 적극 준비 중이다.
이와 관련 반기문 캠프에 최근 합류한 곽승준 고려대 교수는 이날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기존 정치세력과)정책연대를 위해서 큰 틀의 비전부터 제시해야 한다"며 "경제와 외교의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정책을 발굴하고 있다"고 전했다. 곽 교수는 이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한국 제품의 경쟁력도 올라가는 것"이라며 "경제팀에는 외국인 전문가도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러면서 '따뜻한 시장경제'와 '진화된 자본주의'를 포괄적인 경제 비전으로 제시했다.
다만 아직까지 반기문 캠프가 체계화되지 못한 상태라는 점에서 귀국 이후 한동안 메시지 전달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외곽에서 반 전 총장을 지원하는 조직도 자생적으로 등장한 상태다. 반 전 총장 팬클럽인 반딧불이는 이날 글로벌시민포럼 창립대회를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하고, 포럼에 소속된 전문가 그룹이 정책대안을 만들어 반 전 총장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충청권 지역 후보로 고립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 반 전 총장측은 고향 주민들에게 대대적 환영행사를 자제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2월부터 정치권 연대 모색할 듯
전문가들은 기존 정치 세력과의 연대,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초기 대응도 '반풍'의 성공 조건으로 꼽았다.
최영일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는 "조기 대선 국면에서 신당 창당은 물리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어떤 정치세력과 손을 잡느냐에 귀추가 주목된다"며 "친문을 제외하고 모두가 반기문 연대를 외칠 수 있는 정치지형은 마련돼 있기 때문에 2월 초순엔 합종연횡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최 대표는 이어 "구름 위에 떠있다가 가시밭길에 발을 딛는만큼 맷집이 중요하다"며 "(네거티브 공격에 대해)1단계 검증을 통과하면 탄력을 받을 수 있지만 첫스텝이 꼬이면 그로 인해 넘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반 전 총장과 바른정당, 국민의당 등의 선거 연대 가능성에 대해 "반 전 총장이 가장 중심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저희 후보가 된다면 가장 좋지만, 저희 후보가 안 된다면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나라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반 전 총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키로 의결했다.
[신헌철 기자 / 전범주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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