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싸늘하게 식던 `사랑의 온도계` 서민들이 살렸다
입력 2017-01-05 16:18  | 수정 2017-01-05 16:43

"제 작은 나눔이라도 소외된 이웃들에 전달하고 싶습니다." 정유년 새해 아침을 연 1월 1일. 전북 익산시 원광대학교 앞에서 붕어빵과 와플을 파는 김남수(60)씨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200만원을 전달해왔다. 이 재단에서 그는 '붕어빵 기부천사'로 통한다. 지난 2012년부터 해마다 붕어빵 장사로 벌어들인 수익금 가운데 10%를 꼬박꼬박 기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5일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요즘 경기도 안 좋고 AI 탓에 주재료인 계란값까지 껑충뛰어 힘들다"며"하지만 더 힘든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기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2일에는 충남 공주시청에는 80대 '키다리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이 할아버지는 3000만원짜리 수표와 쪽지 한장을 써 두고 사라졌다. 쪽지에는 '가장 불쌍한 시민에게 써 달라'고 적혀 있었다. 직원이 인적사항을 물었으나 이 할아버지는 "다문화 가정, 소년·소녀 가정 등 어려운 이웃에게 설 명절 전까지 나눠줬으면 좋겠다"만 말하며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이 기부금은 할아버지의 뜻 대로 충남 지역 저소득층 100가구에 30만원씩 전달됐다.
꺼져가는 나눔의 온정, 식어가는 '사랑의 불씨'를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한 건 다름 아닌 서민들이었다.
장기불황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에 탓에 기업들 기부가 주춤해졌지만, 오히려 일반 시민들은 홀쭉해진 지갑 속에서도 기꺼이 온정을 꺼내들었다. 정치권과 재계가 모두 '각자도생'에 여념이 없는 사이 작년말 평화적 촛불집회때 목격됐던 일류시민들 모습이 기부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5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이 단체가 진행하는 기부캠페인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는 현재 88.6도를 가리켜 100도에 빠르게 다가서고 있다. 올 1월말까지 목표 모금액은 3588억원. 현재까지 3180억원이 모여 목표액 달성을 눈 앞에 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공익재단 가운데 기부금 모금액이 가장 큰 곳이다. 이 단체는 매년 연말 사랑의 온도탑 캠페인을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지난해 11월 21일부터 오는 1월31일까지 72일간 기부금을 모은다.
이같은 분위기는 불과 한달전과는 확 달라진 것이다. 지난해 11월30일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는 6.1도로 전년 같은 기간 14.3도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고, 대기업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복지재단에 대한 기업 기부가 사실상 뚝 끊겼기 때문이었다. 모금액이 역대 최저를 기록할지 모른다는 염려까지 나왔다.
기업들이 눈치를 보며 움츠리고 있는 사이 일반시민들이 빈 자리를 채우며 연말을 넘어설수록 기부액은 점차 늘어났다. 1억원 이상 고액을 기부하는 시민들을 포함해 자신도 힘든 겨울을 보내면서도 더 여려운 이웃들에게 따듯한 온정을 전달하려는 서민들이 나눔의 행렬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1년 1184억원이던 개인 기부는 지난해 1740억원으로 46.9% 늘었다. 같은기간 기업 기부금은 2509억원에서 3487억원으로 38.9%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일반 시민들 기부증가세가 더 돋보인다. 재단 관계자는 "지난해말 기부가 싸늘하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되레 개인 기부가 더 불붙기 시작했다"며 "올해도 개인 기부액은 작년 기록을 갈아치울 것 같다"고 말했다.
캠페인이 진행될수록 일반시민들 참여가 늘어 올해 목표액 달성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게 재단측 전망이다. 재단 관계자는 "캠페인 기간이 아직 25일가량 남은 데다, 현재 모금 속도를 고려하면 목표액은 무난히 초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기부는 여유가 아니라 관심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라고 말했다.
[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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