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홍대·강남 골목상권 `외국인 사장님`의 진격
입력 2017-01-04 15:02  | 수정 2017-01-04 17:56
서울 강남역 골목에서 "인도야시장" 식당을 차린 파키스탄인 아사드씨.
[뉴스&와이]
-2030의 거리 신촌·홍대, 강남역 골목길서 가게 연 외국인들
-외국인 임대 수요 따라 서울시·자치구 '글로벌중개소'확대

 "저는 구자라트에서 왔어요. 가게를 연 지 열흘째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매일 매일이 새롭습니다." 지난해 12월 말 식당 문을 연 파키스탄인 아사드 알리 씨의 말이다.
 지난해 서울에 온 그는 한국인 친구와 돈을 모아 강남대로변 골목길에 둥지를 틀었다. 간판은 '인도 야시장'이지만 파키스탄 음식을 판다. 카레와 하라바라케밥 등을 나르던 아사드 씨는 "파키스탄 요리는 인도 음식보다 매콤짭짤하고 중동풍 향미도 살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도 음식은 남북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파키스탄은 북인도 음식과 비슷하다"며 "한국 TV 오락·토크 프로그램에서는 '카슈미르 분쟁'으로 인도인과 파키스탄인의 사이가 나쁜 것처럼 연출되지만 실제로는 아니다"고 이런저런 말을 이어간다.
서울 강남역 골목에 있는 "인도야시장" 내부 풍경.
'외국인 200만명 시대'가 열린 요즘, 부동산 상가 임대차 시장에는 3~4년 새 바다 건너온 낯선 이웃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이어지고 있다. 수십억 원을 들여 서울 도심 빌딩을 사들이거나 한 채에 10억원을 넘나드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를 사들여 신문 지면에 등장하곤 하는 해외의 유명 브랜드·기관투자가, 중국인 큰손들 얘기가 아니다. 주인공은 마포 신촌·홍대, 강남역 등 서울 주요 상권의 골목길을 찾아든 젊은 외국인 사장님들이다. 미국, 멕시코, 중국, 프랑스, 쿠바 등 '사장님'들의 국적은 제각각이다. 서울에서 '해외 창업'을 한 이들의 주 종목은 '식당'이다. 멕시코 음식 맛집으로 알음 알음 알려진 마포 연남동 '베무쵸 칸티나(B'mucho Cantina)'와 프랑스 식당 '앙프랑뜨(L'empreinte)', 서울대입구역 인도 음식점 '옷살(Otsal)'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덕에 골목길 풍경은 날로 다양해진다. 마포 신촌·연남동(홍대 인근) 골목은 '리틀 이태원'이 되고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목에 외국인 사장님들이 전용면적 33㎡(10평) 남짓한 작은 가게를 열면 인근 게스트하우스와 하숙집에 사는 청춘들이 찾아와 저녁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이들 동네에선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마포 홍대 인근 A공인 관계자는 "강북 대학가의 경우 외국인 교환학생을 상대로 한 게스트하우스와 오피스텔·원룸 사업 등이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외국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아무래도 외국인이다보니 국내 상가 임대 거래가 낯선 만큼 한국인 지인과 함께 찾아온다"고 말했다.
멕시코 인이 운영하는 마포구 연남동 식당 "베무쵸칸티나"
작은 공간이다보니 주인과 손님이 뒤섞여 친해지기도 한다. 사장님이자 요리사인 멕시코인 훌리안 씨가 다치는 바람에 잠시 문을 닫았던 연남동 베무쵸 칸티나는 '빨리 나아서 오픈해 달라'는 단골들의 응원 속에 지난 연말 다시 문을 열었다.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면서 내외국인 손님들 문화 공간이 된 곳도 있다. '신촌' 골목에 있는 쿠바인 아우구스토 씨의 '리틀쿠바(Little Cuba)'는 라틴계 외국인뿐 아니라 '아메리칸 셰프'에 나와 인기를 끈 쿠바식 샌드위치를 맛보려는 한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곳이다. 아우구스토 씨는 같은 쿠바인 알렉스 씨가 운영하던 곳을 넘겨받아 2013년 4월 같은 이름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곳에는 '로파비에하(Ropa Vieja)' 같은 음식이나 '쿠바리브레(Cuba Libre)' 같은 럼 칵테일만 있는 건 아니다. 봉고, 콩가 등 라틴 타악기가 놓인 창가 쪽 작은 무대와 큰 스크린 사이 공간에는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모임이나 행사를 하고 연말연시 같은 특별한 때에는 종종 살사(Salsa)춤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세월을 나누다보니 떠날 때가 되어 아쉬움을 남기는 곳도 있다. 리틀 쿠바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는 '소모스(Somos)'가 오는 7일 고별식을 한다. 카리브해·남미식 샌드위치와 칵테일을 파는 것 외에도 라틴 댄스를 비롯한 문화·예술 공연과 행사를 열던 이 공간은 주인인 곤살레스 미구엘 씨가 고향인 스페인으로 돌아가면서 4년여 만에 문을 닫는다.
스페인인 미구엘씨가 운영하는 신촌 "소모스(Somos)는 이달 문을 닫는다. /사진 출처=소모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마포·서대문·강남 일대 골목 상권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논란으로 골치를 앓는 중심 상권과는 사정이 다르다. 중심 상권이 유명세를 떨치면서 투자자들의 뭉칫돈이 흘러들어 임대료가 치솟은 반면 상권 이면에 자리한 골목 상권은 자본금이 적은 2030청년들을 비롯해 외국인들이 가게를 차리면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키워나가는 곳이다. 서대문 신촌 일대 B공인 관계자는 "작은 식당을 열 만한 33㎡짜리 '메인 상권'의 1층 작은 매장의 월세 임대료가 신촌은 250만원, 홍대는 220만~250만원 선이지만 네이버나 구글 지도를 봐가며 찾아갈 수 있는 골목길 가게나 상가주택은 40~50%가량 낮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메인 상권의 경우 보증금과 권리금이 각각 1억원을 넘나들지만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골목 가게들은 절반 수준이거나 특히 권리금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머물기 위한 원룸·오피스텔뿐 아니라 상가 임대를 알아보는 외국인도 생겨나면서 부동산 거래는 글로벌 시대를 맞았다. 서울시는 지난 2008년부터 운영 중인 '글로벌 부동산중개사무소' 제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글로벌부동산중개사무소는 국내에 사는 외국인들의 부동산 거래를 위해 서울시에서 부동산중개업을 1년 이상 영위한 공인중개소 중 영어·중국어를 비롯한 외국어가 가능한 지정 업소로, 자치구별로는 외국인이 많은 용산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고액 외국인 임대 수요가 있는 강남·서초·송파, 대학가인 마포 등에 주로 분포돼 있다"고 말했다. 경리단길·녹사평 등 이태원 상권이 자리 잡은 용산에서는 구청이 나서서 서울글로벌공인중개사회와 손잡고 공인중개사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비롯해 외국인 임대 관행 등을 가르치는 부동산글로벌교육을 진행 중이다.
[김인오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