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모터스가 LG화학과 삼성SDI로부터 동시에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했다. 두 회사 사이의 가격 경쟁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21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전기차 배터리 공급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전날 발표한 루시드모터스는 미국 전기차업계에서 테슬라 대항마로 꼽히고 있다. LG화학은 루시드모터스가 출시할 예정인 '루시드 에어'에 들어가는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루시드모터스가 이번에 LG화학과 맺은 파트너십은 삼성SDI와 맺은 것과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한 증권사 에너지담당 연구원은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스타트업 하나에 동시에 배터리를 공급하게 됐다고 혹평했다. 그는 루시드모터스가 삼성SDI와 LG화학 양쪽에 공급가격을 알아본 뒤 서로 경쟁을 유도하며 배터리를 납품받으려는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루시드모터스가 오는 2018년 계획대로 루시드 에어를 출시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데 있다. 지난 10월 LG화학이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힌 패러데이퓨처스도 '테슬라 대항마'로 꼽혔지만 현재 자금 조달 문제로 공장 건설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제품 양산도 불분명한 스타트업이 국내 1·2위 배터리 업체들의 경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루시드모터스가 공급받기로 한 원통형 배터리는 LG화학과 삼성SDI가 주력 전기차용 배터리로 내세우는 방식도 아니다. LG화학은 여러번의 충방전에도 셀 손상이 없고 디자인 편의성이 높은 파우치형을, 삼성SDI는 외부충격에 강하고 대량 생산이 편한 각형 배터리를 주력 전기차 배터리로 각각 내세운다. LG화학은 패러데이퓨처스에도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관련 기술을 공개한 뒤 스타트업들이 원통형 배터리를 선호하게 됐다"고 설명헀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설비를 구축하며 파우치형과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각각 투자를 해온 LG화학과 삼성SDI가 원통형 배터리를 전기차용으로 공급하면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수익성 확보 문제에 대해 삼성SDI 관계자는 "정보통신기기에 들어가는 것을 포함한 원통형 배터리 시장에서 삼성SDI는 4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원통형 배터리는 개발된 지 오래된 배터리 형태로 수급이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용량과 수명이 적은 게 단점으로 지적돼왔다. 하지만 테슬라는 원통형 배터리 여러 개를 차제 바닥에 까는 방식으로 단점을 해결했고, 이 방식은 여러 개의 배터리가 차체 하부에서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효과까지 나타냈다.
마케팅도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이 주도하고 있다. LG화학은 패러데이퓨처스에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자 "구매사와 협의되지 않은 내용이 보도됐다"며 당혹스러워 했다. 이번 루시드모터스와의 협약 체결도 자체적으로 홍보하지 못하고 삼성SDI는 미국 포춘지가 보도한 내용을, LG화학은 루시드모터스의 보도자료를 각각 인용했다.
이에 대해 해당 업체 관계자는 "부품 공급업체가 수주 내용을 자체적으로 홍보하는 과정에서 구매사의 전략이 노출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며 "중간 부품을 납품해야 하는 업계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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