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어느 순간 엄마] (24) 때가 되면 다 말하기 시작한다는 말에도…
입력 2016-11-30 16:44  | 수정 2016-11-30 17:22

성격상 누가 뭐라고해도 한번 들기 시작한 불안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편이다. 자식 일에 관해선 더더욱 그렇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 영혼을 야금야금 잠식해 가는 불안함을 아이를 낳은 후부터 참 많이 경험하고 있다.
요즘 내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불안함은 당췌 아이가 말이 늘지 않는다는 것. 7~8개월때부터 했던 ‘엄마, ‘아빠가 다다. 또래 엄마들 사이 ‘입이 트였다고 말하는 그 놀라운 경험을 난 아직 하지 못했다. 내년 3월이면 두돌을 맞는데도 말이다.
본래 여자애보다 남자애들이 말이 좀 느리대”
내 고민이 비교적 적었을 때 흔히 들었던 얘기다. 성별로 단정짓기는 뭣하지만 육아 서적에서도 그렇고 육아선배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여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내 아이와 같은 남자 아이인데도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엄마. 아빠는 기본, 빠방(자동차를 뜻함), 까까(과자를 뜻함), 할머니, 보고싶어, 조심해, 밥, 물, 우유 등등 그 아이를 둘러싼 모든 환경, 인물들에 대해 비록 발음은 좀 서툴더라도 지칭하는 모습은 정말 경이로웠다. 심지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건 뭐야?”라고 되묻기까지 했다.

엄마와 대화가 얼추 가능한 또래 남자 아이들을 본 이후부터다. ‘뭐가 문제지?, ‘왜 말을 못하는거지?. ‘웅웅거리기만 하고 왜 단어를 내뱉을 생각을 안하지?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걸까?, ‘이러다 또래보다 뒤쳐지는거 아니야 ‘아니야, 괜찮을거야 ‘기다려보래잖아 등등등. 하루에도 몇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맛보았다.
이런 고민은 아이를 돌봐주시는 선생님이 넌지시 00가 다른 애들보다 좀 말이 느린 것 같아요”라는 말 한마디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내는 선생님이 아니던가! 그러다보니 아이를 보는 눈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렇죠? 제가 보기에도 그래요. 엄마, 아빠를 무지 빨리 말하길래 말을 빨리 시작할 줄 알았는데….”
말 하는 것보다 말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해”
이 말이 위로가 될 때도 있었다. 말귀는 기가막히게 다 알아먹는 아이여서다. 가령 엄마, 아빠가 대화 도중에 자동차란 단어가 튀어나오면 가만 있다가도 장난감 자동차를 집어왔다. 색깔 구분까지 가능해 빨간색 자동차 하면 정말로 빨간색 자동차를 가져왔다. 뿐만 아니다. 어금니, 어깨뼈, 콧구멍, 턱, 무당벌레, 택배, 신용카드 등 어려운 단어도 척척 알아들어서 정확히 짚거나 가져왔다.
하지만 말귀는 알아먹는데 말을 잘 하지 못하면 아이의 자존감이 약화될 수 있다”는 한 의사 선생님의 말이 나를 순식간에 궁지로 몰았다. 아는 게 병이라고 했던가. 그럴 법했다. 남의 말은 다 알아듣는데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을 때 오는 좌절감이 얼마나 클까. 이후 난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수시로 말해볼까?”, 왜 말을 안해?”라고 아이에게 되물었다. 아니 거의 일방적으로 다그쳤다.
엄마가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아예 아이가 말 할 필요성을 못 느낄 수 있다는 지적에 나의 말수는 즉각 줄여버렸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아이가 입을 닫았기 때문이다. 나의 과잉 친절에 그저 ‘응 혹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싫다는 표현만 하면 됐던 아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것저것 시켜대는 엄마의 행동 변화에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때를 쓰기도 했다. 그래도 통하지 않자 아이는 슬슬 내 눈치를 봤고, 오히려 옹알옹알 거리던 것도 하지 않고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말았다. 일주일 정도를 그랬던 것 같다.
절대로 말을 하라고 아이에게 강요를 해서는 안 돼”
그랬다. 나의 일주일간의 경험담을 들은 육아 선배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당시 난 행여 아이가 자신감이 저하되거나 자존감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그렇게 되는 것을 엄마인 내가 아니면 누가 막겠냐는 생각 뿐이었다.
아이의 입을 트이게 하기 위한 방법은 아이 입장에서 보기에 거칠었고, 너무도 갑자기였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던 엄마가 도무지 말은 않고 되려 자기에게 말을 하라고 강요만 하니 아이가 얼마나 당황했을까.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말을 한다는 게 인지 능력만 뒷받침 돼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혀를 비롯한 성대, 구강근육의 발달 등 신체적 성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일명 ‘베이비토크(baby talk)라고 해서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그들로부터 말하는 것을 모방하고 배우면서 말을 하기 시작한다고도 한다.
아이의 성격도 영향을 미치는 게 만약 아이가 조심스러운 성격이면, 말하는 것 역시 실수할까봐 조금 더 조심스럽게, 느리게 말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심지어 문과적 성향인지 이과적 성향인지에 따라서 전자면 표현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니 말을 빠르게 하는 것이고, 후자면 좀 더 논리정연하게 하기 위해 늦어질 수 있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듣기도 했다.
결론은? 두돌 무렵의 아이들이 말을 시작하기 위해선 참으로 복잡한 요인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일주일간의 전쟁을 치룬 난 꼭 다문 아이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 본래대로 돌아갔다. 틈만 나면 아이에게 재잘재잘거리며, 여전히 ‘응 아니면 ‘싫어라고만 표현하는 아이지만 그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고 있다.
대신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절대 말을 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옹알옹알 소리만 내도 칭찬해주기 바쁘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새로운 소리를 내며, 제법 소리를 길~게 낸다. 뭔가 문장을 말하는 듯 한데, 알아먹기는 힘들다. 그래도 기쁘다. 내 눈치만 슬슬보며 입술을 꼭 깨물던 아이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로 가슴이 철렁했으니까.
육아 선배들은 이 시기를 잘 보내야한다고 하나같이 조언한다. 자칫 엄마의 조급증이 아이의 입을 아예 닫게 만들거나, 말을 하더라도 더듬더듬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다 한다는 말, 지나친 낙관도 금물이지만 괜한 조바심에 오버해서는 더욱 안 될 일 같다. 엄마, 아빠 이외에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짠하고 터트릴 말은 과연 무엇일까. 너무도 궁금하다. 그런 기대감을 느긋하게 즐겨보련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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