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레랑스(관용)의 국가였던 프랑스마저 우익 포퓰리즘(대중 연합주의) 쓰나미에 휩쓸리고 있다. ‘정통 보수를 재천명한 프랑수아 피용이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공화당 공식 후보로 선출됐기 때문이다.
27일(현지시간) 프랑스 제1야당인 공화당의 전당대회에서 피용은 67%를 획득, 온건 보수파인 쥐페를 큰 표차로 꺾었다. 특히 이번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도 2유로(2500원)만 내면 투표할 수 있는 국민참여경선을 실시했다. 일반 국민들의 지지성향이 많이 반영된 이번 전당대회에서 프랑스 국민들은 우파 포퓰리즘 깃발을 내세운 피용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주일 전인 지난 21일 공화당 1차 투표에선 니콜라 사르코지 전 총리를 퇴진시킨 바 있다.
유럽발(發) 우경화 흐름은 내년 선거의 해로 불릴 만큼 굵직한 선거가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경제침체와 난민문제로 난맥상을 드러낸 유럽은 내년 선거에서 우경화로 일컬어지는 ‘백색 바람의 광풍이 예상된다.
유럽 우경화 바람의 큰 물결은 프랑스가 스타트를 끊었다. 프랑스 공화당 대선 후보인 피용은 대년 4~5월로 예상된 대선서 당선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프랑스의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피용 전 총리는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이상을 얻는 후보가 없을 경우 결선투표를 벌이는 방식이다.
피용 전 총리는 ‘해리스 인터랙티브가 이날 실시한 조사에서 1차 투표 때 26% 지지를 받은 후 2주 뒤에 열리는 결선투표에서 역시 67%의 지지율로 33%를 얻은 르펜 대표에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예상됐다. 피용 전 총리는 여론조사기관 ‘오독사가 지난 25일 유권자 998명을 대상으로 벌인 시뮬레이션 조사에서도 1차 투표에 이어 결선투표에서 71%의 지지를 얻어 20%를 확보한 르펜 대표를 제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르코지의 2인자로 머물렀던 피용의 정치이력은 화려하다. 파리 서쪽 200㎞ 떨어진 사르트 출신인 피용은 27살이던 1981년 프랑스 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시절 교육부 장관을 시작으로 1995년과 2002년, 2004년 자크 시라크 정부에서 정보기술장관과 노동부장관, 교육부 장관을 각각 지내고,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 때 총리로 발탁됐다. 장관직만 4번에 총리로 5년 임기를 꽉 채웠다. 아마추어 드라이버인 그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선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알렝 쥐페와 사르코지에 이어 3위를 달리던 피용이 1차·2차 투표에서 연달다 1위를 차지한 이변에 대해 프랑스 주류 정치판의 큰 변화를 예고한다고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 대선의 반엘리트주의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영국의 국민투표,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약진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또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 있는 중장년층인 이른바 ‘부르주아 유권자들이 대거 피용을 지지한 것도 눈길을 끈다. 피용은 열렬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친시장주의자이지만 경제에 있어 국가의 역할 및 개입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처의 정책과는 다소 결을 달리했다. 피용은 이번 경선에서 ▷철저한 자유시장 개혁 ▷이슬람과 이민자들에 대한 강경노선 ▷전통적 가족 가치의 존중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관계 개선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특히 프랑스는 다문화 국가가 아니다”라고 선언, 우익 포풀리즘에 편승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프랑스의 이러한 흐름은 유럽 전반의 우경화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내달 4일 이탈리아 국민투표(상원의원 축소)에서 마테오 렌치 총리의 실패가 확실시되고 있다. 렌치 총리가 사퇴하면 조기총선 압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선거가 다시 치러질 경우 극우 포퓰리즘으로 제1야당에 위치한 오성운동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같은 날 (4일) 치러지는 오스트리아 대선에도 ‘오엑시트(오스트리아의 EU탈퇴)를 외치고 있는 극우 정당 자유당의 대선후보 노르베르트 호퍼가 우세를 점하며 대선 승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헝가리는 내년 5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현재 의회 다수당이자 대통령 소속당 피데스당은 보수우파 정당으로 집권을 이어갈 것으로 점쳐진다. 독일은 내년 2월에는 대선을, 9월에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4선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지난 4월 열린 지방선거에서 대약진을 거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내년 3월 총선을 앞둔 네덜란드에서도 극우정당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갖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얻고 있다. 체코에서는 ‘체코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안드레이 바뷔시 재무장관이 이끄는 정당 ‘ANO가 내년 10월의 체코 총선에서 가장 유력한 정당으로 지지율을 얻고 있다. 이 외에도 영국과 포르투갈은 각각 내년 5월, 9월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영국은 이미 브렉시트 투표에서 극우 바람을 일으킨 바 있고 포르투갈은 지난 1월 진행된 대선에서 중도우파 대통령이 당선되며 우파 흐름을 이어갈 전망이다.
[장원주 기자 / 임영신 기자 / 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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