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너무나도 느린 정의…170만 캄보디아 대학살, 37년만에 단죄
입력 2016-11-23 17:31 
37년만에 단죄/사진=연합뉴스
너무나도 느린 정의…170만 캄보디아 대학살, 37년만에 단죄


23일 캄보디아 전범재판소(ECCC)가 20세기 최악의 참사 가운데 하나인 '킬링필드'의 핵심전범 누온 체아(90) 전 공산당 부서기장과 키우 삼판(85) 전 국가주석에 대한 종신형을 확정하자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습니다.

최소 170만 명이 숨진 대학살의 주범을 단죄해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크메르루주 정권의 지도부였던 이들을 처벌하는 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1979년 크메르루주 정권 붕괴 이후 37년 만입니다.

크메르루주 정권은 1975년 친미 론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유토피아 사회 건설에 나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도 프놈펜 주민들과 지식인들을 강제 이주시키며 반대세력 숙청과 고문, 학살 등을 일삼았습니다.

크메르루주 정권 집권 기간에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4분의 1가량인 170만∼22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누온 체아는 크메르루주 정권의 2인자이자 공산주의 이론가로서 반대파 숙청과 학살을 주도했습니다.

프랑스 유학파인 키우 삼판은 명목상의 국가 지도자로 활동하며 반인륜 범죄에 동참했습니다.

크메르루주 정권에 대한 단죄 작업은 2003년이 돼서야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국제재판을 열기로 합의하면서 시작됐습니다.

2006년부터 ECCC가 활동에 들어갔지만, 지금까지 기소된 킬링필드 전범은 9명에 그쳤습니다.

이중 법의 심판을 받은 전범은 2012년 최종심에서 종신형이 선고된 카잉 구엑 에아브(74) 투올슬렝 수용소장을 포함해 3명에 불과합니다.

킬링필드 주범 가운데 이엥 사리 전 외무장관과 이엥 티리트는 각각 2013년 3월과 2015년 8월 노환으로 숨졌습니다.

이엥 티리트는 크메르루주 정권 1인자인 폴 포트의 처제이자 이엥 사리 전 장관의 부인으로, '퍼스트레이디'로 불렸습니다.

폴 포트는 전범 재판이 시작되기 전인 1998년 사망해 법의 심판대에 앉히지도 못했습니다.

나머지 전범들도 70∼80대의 고령으로 제대로 재판을 받거나 복역할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