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정래 "헬 조선 말하기 전에 투표부터 해라" 일침
입력 2016-11-21 13:19 
조정래 / 사진=연합뉴스
조정래 "헬 조선 말하기 전에 투표부터 해라" 일침


"헬 조선이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투표부터 해라."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18일 저녁(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UC 버클리대에서 열린 '정글만리' 영문판 출간 기념회에서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로 인해 젊은이들은 '헬 조선'이라고까지 말하는데 이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는 한 청중의 질문에 그렇게 일침을 가했습니다.

그는 "그대들 20∼30대들은 총선이든, 대선이든 투표율이 25%밖에 안 된다. 반면 60대 이상은 70∼80%에 달한다. 모든 결정권을 기성세대에게 넘겨 준 사람들이, 그런 무책임한 사람들이, 선거 때면 놀러 가는 사람들이 헬 조선을 말하느냐"며 "투표부터 제대로 한 후에 그런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위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한 유학생이 "한국 문학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문학에 비해 영문 번역이 거의 되지 않는다"고 말하자 "해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의 '모국 사랑'은 이해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의 위상이 그 정도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중국은 18세기 동안 전 세계의 중심국가였고, 일본은 200년 전 서양문물을 매우 빠르게 받아들여 최고의 근대화를 이뤘지만 우리 역사는 사실상 71년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서양 사람은 아시아 국가라고 하면, 중국, 인도, 일본밖에 모른다. 그것이 우리의 위상이며, 국가의 위상이 문학의 위상"이라고 했습니다.

또 "내가 정글만리를 쓴 것은 20∼30대에게 중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다"며 "중국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일본 모두 그렇다. 우리는 반도국가의 약소민족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태어났다. 이들 모두와 친구로 지내는 등거리 외교를 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은 "통일을 이뤄 영원히 중립국으로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으로 이어진 세 개의 대하소설 이후 한국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한강 이후의 얘기를 소설로 다룰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내 나이가 74세다. 또 하나의 대하소설을 쓰기엔 나는 너무 늙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전두환 이후 80년대는 '가두투쟁'을 했던 지금 40∼50대의 승리의 시대였다. 기회 있을 때마다 그 나이의 후배 작가들에게 부탁했다. 다음의 소설은 그대들의 몫이라고. 한 시대가 소설이 되려면 30년이 걸린다. 그 30년이 지났는데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후배들이 써줬으면 한다. 나는 건강하게 살아 통일을 보고 싶다"고 답변했습니다.

조 작가는 이날 한국의 문학과 우리 사회의 문제 등에 대해 특유의 간명하고 직선적인 화법으로 답했지만, 민감한 정치적 사안은 거론하지 않았다. 주최 측은 사전에 "정치적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글로벌 무대의 한국 문학. 조정래와 정글만리'라는 이날 행사는 UC 버클리대 한국학 센터가 동아시아연구소와 함께 주최했습니다.

그는 이번 행사에서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 브루스 커밍스입니다.

조 작가는 태백산맥을 쓴 뒤 1994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해 만 11년을 조사받았습니다. 그때 검찰은 그의 소설에서 주장하는 '한국전쟁의 원인은 토지문제에서 비롯됐다'는 논거를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태백산맥을 거의 다 써가던 1989년 커밍스의 책을 읽고 눈이 번쩍 띄는 충격을 받았다"며 "책의 서문 가운데 '1945년에 한국은 혁명이 성숙해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공산주의 운동이 있었으며, 특히 남부에서의 토지 조건과 소작관계는 혁명을 예고하는 상황이었다'는 문장은 저의 뇌리를 치는 쇠망치였다"고 말했습니다.

태백산맥의 논거를 뒷받침해 주는 든든한 원군이 된 커밍스의 저서는 훗날 검찰 조사에서 '객관적 자료'로서도 그 역할을 충분히 해줬다는 것입니다.

조 작가는 "그(커밍스)와 저는 동갑내기라며, 우리 동갑내기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하나는 소설을 쓰고 하나는 역사서를 쓰고 있었던 것"이라며 이 행사에 앞서 그와의 만남을 요청했고, 커밍스 또한 기꺼이 응낙했다고 한다. 시카고대 교수로 있는 그는 이날 '한국 근대사의 주인공은 일반 민중'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가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아쉽다"며 "오늘 내가 한 말을 그에게 전달해 달라"고 주최 측에 당부했습니다.

조 작가는 "다음에 쓸 책의 주제는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로 정했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될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작금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혼돈의 대한민국을 그가 외면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한정된 시간을 사는 동안, 내가 해득할 수 있는 역사, 내가 처한 사회와 상황, 그리고 그 속의 삶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첫 소설집 '황토'(1974년 6월)의 '작가의 말'에서 맹세한 바 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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