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덕수궁에서 만나는 미술계의 칸트 유영국
입력 2016-11-15 15:20 
김인혜 학예사

철학자 칸트는 매일 오후 3시30분이면 산책을 나서, 동네 사람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만큼 일상에 철저했다는 얘기다. 칸트에 걸 맞는 화가가 한 명 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유영국(1916-2002)이다. ‘스토리도 ‘신화도 ‘말도 없었던 대표적인 ‘3무(無) 작가다.
금산도 싫고, 금밭도 싫다”며 돈 버는 일을 뿌리치고 마흔이 넘어서야 작업을 다시 시작한 유영국은 매일 아침 7시에 기상해 8시부터 11시 반까지 작업하고, 점심 시간 후 다시 2시부터 6시까지 작업했다. 그 규칙을 통해 1960년대 최고의 작품을 그릴 수 있었으며 지금껏 한국의 독보적인 색면 추상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볼 일이 없었던 국내 미술 팬들에게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그의 대표작 100점을 엄선한 회고전 ‘유영국, 절대와 자유전이 최근 개막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인혜 학예연구사(42)는 직전 전시였던 이중섭 100주년 전시도 기획했던 주역이다. 동갑내기인 그 둘의 차이점에 대해 이중섭이 감정에 충실하고 즉흥적인 디오니소스적 인물이라면 유영국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아폴로적 인간이다. 유영국은 특히 세파에 벗어날 수 있는 강한 멘탈의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작품에 표기된 작가 서명만 봐도 이 둘의 차이는 뚜렷하다. 이중섭은 보통 ‘중섭이라는 이름의 자음과 모음을 풀어서 쓰는 데 그때 그때 감정에 따라 표기방식이 다르다. 유영국은 초지일관 영어로 ‘YOUNGKUK이라고 썼다. 이미 초기부터 장기 계획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얘기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박사 출신인 김 학예사는 올해 덕수궁관에서 열린 탄생 100주년 3부작 시리즈(변월룡, 이중섭, 유영국) 가운데 이중섭과 유영국을 기획하고, 변월룡은 전시 발의를 한 주역이다. 14년차로서 숨가쁜 한해였지만 뿌듯함이 크다.
근대 거장 전시는 큐레이터들이 다소 꺼리는 실정이에요. 관계도가 복잡하고 소장가가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이번 전시도 32군데서 작품을 빌려왔어요. 좋은 작품은 대부분 개인 소장자들이 갖고 있어 실제 작품을 보지 못하고 가져온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그는 근대 작가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한 작가가 누가 있냐”며 험난한 시절에도 불구하고 마크 로스코(미국 추상 표현주의 화가)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빼어난 조형미를 선보인 유영국에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영국 작품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없지만 뛰어난 색채감과 비율, 대비에서 오는 긴장감과 숭고함이 단연 압권이다. 고향 울진의 산을 평생 모티브로 삼았다. 유영국은 산은 내 앞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고 했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주체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대, 거장의 날선 붓질에 마음이 기운다. 관람료는 3000원.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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