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한마디로 ‘아웃사이더이자 ‘이단아다. 쏟아내는 막말과 상식을 넘어서는 행동으로 항상 튀는 인물로 자리매김해 왔다.
대선후보로서도 그랬지만 그가 살아온 70년 세월 속에 평탄하게 흘러간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사업가에서 연애인으로 그리고 정치인으로까지 끊임없이 변해왔지만 그 과정에서의 돌출행동은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엄중한 자리에서 그가 과연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트럼프는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부침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인내심을 키웠고 강철과 같은 인물로 성장했다고 스스로 주장한다.
트럼프는 1946년 뉴욕 퀸스에서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와 어머니 메리 매클리오드의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트럼프 가문은 1885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출신 집안으로 부동산 개발업으로 자수성가했다. 트럼프의 아버지는 노동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며 첫째 형인 로버트와 함께 트럼프에게 유리병 줍는 일을 시켰다. 트럼프 형제는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모은 병을 팔아 용돈벌이를 했다. 트럼프의 괴팍한 성격은 공사판에서 만났던 거친 사람들과 사이에서 생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는 13살까지 다녔던 학교에서 음악 선생님의 얼굴을 때리는 ‘대형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그의 부모는 트럼프가 8학년이 되던 1959년에 그의 거칠고 반항적인 행동을 바로잡고자 사립 기숙학교인 뉴욕군사학교로 전학시켰다. 트럼프는 자서전에서 아버지는 나 자신을 높이는 자세로 살라고 훈육시켰다”며 나에게 ‘킬러가 돼라고 가르쳤다”고 회고했다.
이 시기에 트럼프는 아버지가 관리하던 2만4000가구의 집세를 받는 등 집안일을 도우면서 부동산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64년 포덤대에 입학했지만 부동산 분야를 전문적으로 배우고자 관련학과가 개설된 위해 펜실베이니아대 경영학부(워튼스쿨)로 편입했다.
트럼프는 주로 소규모 임대업을 했던 아버지와 달리 화려하고 큰 건물 투자에 관심을 가졌다. 1970년대부터 오피스 빌딩, 호텔 등 대규모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특히 1974년 파산 직전이었던 코모도어 호텔의 소유권을 뉴욕시에 단돈 1달러에 넘기는 대신 99년간 임대권한을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트럼프는 교통의 요지였던 이 자리에 그랜드하얏트호텔을 세워 크게 성공했다. 이 밖에도 그가 36세였던 1991년에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주상복합 건물인 ‘트럼프타워를 세우면서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바꿔놓은 인물로 평가받았다. 1980년대 후반에는 당시 경영 부진에 빠져있던 이스턴항공을 인수해 자신의 이름을 붙여 ‘트럼프셔틀이라는 항공서비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처럼 트럼프는 사업마다 자신의 이름을 붙여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능력을 보였다.
한평생을 승승장구해온 것처럼 보이는 트럼프이지만 세계 경제가 요동칠 때마다 실패의 쓴 맛을 봤다. 1990년 부동산 경기 침체가 시작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1년만에 절반 넘게 떨어져 파산을 맞았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은행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플라자호텔, 트럼프셔틀, 유람선사업 등을 매각하면서 사업 재편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트럼프는 그 해 포브스가 선정하는 억만장자 부호에서 누락되면서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재기할 수 없는 인물”로 꼽혔다.
그러나 1996년 이후 세계 경기 회복과 더불어 호텔, 카지노 등 리조트 사업이 살아나면서 트럼프도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부동산 이외에 연예사업에도 발을 넓혀 미스USA, 미스유니버스 등 미인대회를 인수해 운영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NBC방송의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를 공동으로 제작해 직접 사회를 맡으면서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정치적으로는 잦은 혼란을 겪었다. 실제로 1987년까지 민주당 당원이었던 트럼프는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영향을 받아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트럼프의 선거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레이건 전 대통령이 대선 당시 사용했던 것과 같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평소 트럼프가 레이건 시절의 미국은 존경받는 나라였다”며 내가 당선된다면 미국은 다시 존경받는 나라가 될 것”이라며 자신이 ‘제2의 레이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공화당 이적 당시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히고 신문에 전면 광고를 싣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다 돌연 번복했다. 1999년 대선에 나서겠다며 개혁당으로 이적한 뒤에도 선거운동 직전에 불출마를 선언에 논란을 빚었다. 두 차례 모두 트럼프가 자서전을 발간한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이를 홍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는 2001년 민주당으로 복당해 이번 대선에서 경쟁을 펼친 힐러리 클린턴에게 무려 10차례에 걸쳐 기부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중 4번은 2008년 힐러리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로 기부금은 최소 10만달러(1억136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트럼프는 당시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트럼프드(Trumped!)에서 힐러리는 좋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는 비즈니스 목적이었을 뿐”이라고 일축했했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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