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에는 이란 북부 지방의 호세인이라는 가난한 청년이 나온다. 일자무식에 가진 것 하나 없는 그는 자신보다 더 배우고, 집안도 유복한 어린 여성 테헤레에게 정말 시도때도 없이 구애를 해댄다. 물론 번번이 무시당하기 일쑤인데, 극 중 케세브레즈 감독이 비슷한 수준의 다른 여자를 찾으라고 권하자 그는 이렇게 쏘아붙인다. 글은 아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과, 부자는 가난한 사람과, 지주는 집 없는 사람과 결혼하면 모든 사람이 서로 도우며 살 수 있잖아요.”
일견 그럴듯한 말이다. 하지만 그 바람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이 청년의 생각과는 정반대인 탓이다. 이른바 가진자는 비슷한 부류와 짝을 맺어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공고히 하는데 골몰하고, 가진 것 없는 대부분은 결혼과 출산마저 기피하며, 오포세대라는 슬픈 언명 아래 자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정은 미국에서 더 심한 듯하다. 미국 법학자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의 저작 ‘결혼 시장은 갈수록 초혼연령이 높아지고, 결혼·출산율이 낮아지며, 부부의 절반이 이혼하는 자국의 현주소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저자들에 의하면 경제적 불평등은 미국 내 가부장제 붕괴와 가족 집단 해체를 가져왔고, 가사일에 얽매였던 여성에게 자유를 안겨줬다. 이는 소득 수준에 따른 남녀들이 짝을 찾는 방식과 결혼관 자체에도 변화를 촉진했는데, 특히 여성보다 남성에게 영향이 더 컸다. 소득 양극화 심화로 중간 계급의 절대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상·하위 계급의 남성들은 모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과 결혼하길 원한다는 게 그 예다. 맞벌이가 아닌 이상 안정적인 삶을 구가하기 어렵다는 우려의 발로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하위 계급 여성들의 결혼 포기로 이어졌다. 가난한 남성과 결혼함으로써 훤히 보이는 불행한 앞날을 기약할 순 없는 것이다.
반면 상위 계급의 엘리트 여성들은 큰 수혜를 입게 됐다. 원하는 짝을 취사선택해 안온한 결혼생활을 누릴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원하는 짝과 결혼한 상위 계급은 대개 결혼의 가치를 긍정하고, 가사와 자녀양육에 적극 임하지만, 나머지 계급은 그 반대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이다.
이같은 분석에 입각해 저자들은 지금의 불평등이 향후 더 큰 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임을 우려한다. 자녀에게 쏟아붙는 유무형의 자원 또한 격차가 심해져 이들 계급들을 가로막는 장벽은 더욱 견고해지고, 이는 사회 전반의 봉건 계급사회로의 퇴행을 부추기게 됐다.
이 때문에 저자들은 근원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재건할 것을 제안한다. 전 계급에 경제 활동의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함으로써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제공하고, 더 나아가 자유로운 계급 이동 사다리를 복원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언뜻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주문처럼 들린다. 하지만 미국이나, 그 미국을 좇는 한국이나 상식의 재건부터 필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이 책의 결론이 어느정도 유의미한 것만은 사실이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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