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987년체제라고 지목한 현행 헌법은 1987년 민주화항쟁의 결실로 탄생했다. 그해 4월 전두환정권이 대통령 간접선거를 사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국민적 저항이 일었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했다. 6월 들어 민주화항쟁은 전국 20~30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면서 500만여명의 국민이 참여하는 전국민적 민주화운동으로 확대됐다. 결국 전두환정권은 국민들의 저항에 굴복해 대통령직선제를 수용하는 6·29선언을 하는데 이르렀다.
이후 여야 의원 45명으로 구성된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제9차 헌법개정안을 마련했고, 9월 18일 민주정의당 이대순·통일민주당 김현규·신한민주당 정재원·한국국민당 양정규 원내총무가 대표발의하고 260인의 여야 국회의원이 참여한 헌법개정안이 발의됐다. 9월 21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공고했고, 10월 12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찬성 254표, 반대 4표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 가결됐다. 당시 국회 재적의원 272인 중 해외출장, 입원, 수감 등으로 11명이 결석했고, 본회의에 출석은 했으나 표결에는 불참한 의원은 3명이었다.
당시 헌법개정에 반대한 의원들도 군부정권에 찬성해서 반대표를 던진 것은 아니었다. 신한민주당의 신경설 의원과 이철승 의원은 정당정치와 책임정치가 구현되고 진보와 보수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의원내각제가 더 합당하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개헌 자체에 대해선 여야를 막론하고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던 셈이다. 국회를 통과한 헌법개정안은 10월 27일 국민투표에 부쳐져 93.1%의 찬성으로 확정됐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제9차 대한민국헌법개정안은 대통령직선제와 5년 단임제 시행하고, 비상조치권·국회해산권을 폐지하여 대통령권한을 축소하는 게 골자였다. 또 국정감사권 부활, 언론의 자유 보장, 최저임금제 실시 등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이 9차 헌법개정안에 포함돼 현재의 정치 체제를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게 됐다.
이처렴 5년 단임제는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으로 탄생했지만 3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국가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구도가 깊이 뿌리내리면서 국회는 국가의 장기적 이익이 아니라 오직 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작동하게 됐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즉 대통령과 정부의 발목잡기에 급급한 야당과 청와대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는 여당의 모습은 87년 체제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한 문제라는 것이다. 또 단임제 하에선 레임덕이 불가피해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3년에 불과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당시에는 국회 주도로 개헌이 이뤄졌지만, 이번 개헌은 대통령이 직접 불을 붙이고 나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면서 대통령이 나선 만큼 추진동력은 붙겠지만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등장할지는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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