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자의 눈] 김영란법 핑계 대며 할 일 안 하겠다는 정부
입력 2016-10-13 06:01 
수출 관련 기획 기사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에 자료를 요청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대변인실을 통해 일부 자료를 받았지만, 부처 합동 내용만 들어 있는데다 분야별 세부 내역도 빠져 있어 추가 자료 요청을 위해 이번엔 담당과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자료 얘기를 주고받던 담당 사무관은 중점 추진분야와 예산을 항목별로 정리한 예산안을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이를 거절했다.
예산 관련 부분은 기재부에서 민감하게 생각해서 공개가 쉽지 않다는 둥, 문의를 한 사람이 기자인지도 모르니 확인을 해야 한다며 돌연 전화를 끊었다.

요청한 자료는 농림축산식품부는 물론,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등 대부분의 부처가 홈페이지에 친절한 설명과 함께 올려놓은 공개된 자료인데도 말이다.

기자인지 모르겠다니 말에 직접 자리로 찾아갔다.
이번에 돌아오는 답변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때문이라는 얘기를 꺼낸다.
김영란법 해설집까지 가져와 해당 항목을 가리키며 설명을 한다.
기자가 담당과로 전화를 해 자료를 요청하는게 김영란법 조항 중 법령·기준에서 정한 절차와 방법에 위배되는 행위일 수 있다는 거다.
개별적인 자료 요청은 김영란법 예외 사유인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행위에도 어긋날 수 있다는 조항도 보여준다.

공개적이고 통상적인 자료 요청을 거부당한 기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곧바로 질의를 했다.
개별 언론사 기자의 자료 요청이 김영란법 위반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권익위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거다.
앞서 금융위에서도 이런 일이 생겨 전체 정부부처 회의를 통해 언론사의 자료 요청이나 취재에 대해 김영란법을 내세워 거부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내용을 전달했는데도 이런 일이 다시 발생했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런 권익위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형법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으면'이라는 설명과 '정보보유 기관의 홍보 정책의 문제다'라는 대목이다.
김영란법 해석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업무연관성'처럼 '형법상 비밀'의 범주가 참 애매하다는 거다.
기자가 요청하고 공무원이 주는 자료의 범주가 형법상 비밀에 해당하는지는 해석하기에 따라 또 실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판결을 받지 않고선 쉽게 가늠하기가 어렵다.
법령상 비밀로 지정된 사항만이 대상인지 정부가 공개를 꺼리는 자료나 공무상 취득한 내용 등이 포함되는지 여부에 따라 대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앞서 금융위가 취재를 거부한 사례도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김영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직무상 비밀 누설' 또는 '공공기관이 생산하는 용역을 특정 개인·단체·법인에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서 벗어나 사용하도록 하는 행위' 등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홍보 정책의 문제'라는 해석도 걸리는 부분이 많다.
정책 홍보 등 이른바 정부에 우호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김영란법을 내세워 언제든지 자료 요청을 거부해도 된다는 얘기로 들린다.
기자에게 정부 나팔수가 되라며 김영란법을 만든 건 아닐 텐데 말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 정책과 설명을 듣고 싶고 들어야 하는 민원인들과 일반인들은 기자보다 더 큰 장벽을 넘어야 한다.
아니 아예 전화조차 받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부정청탁을 막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입된 김영란법이 이렇게까지 왜곡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언론 취재를 피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안 하기 위해 김영란법을 만들었을 리 만무한데 말이다.

정규해 기자 spol@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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