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쉽게 배워 보는 ‘복잡한’ 국제 화물운송의 세계
입력 2016-09-23 15:16 

# 부산항에서 한진해운 물류사태로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연관 기업은 총 5663개다. 여기에 한진해운 선박에 짐이 묶여있는 화주는 8000여개, 얼라이언스 선사 4곳을 비롯해 한진해운에 배를 빌려준 선주, 돈을 빌려준 금융사, 관리자가 된 한국 법원, 정부까지...
한진해운을 두고 얽혀있는 이해관계자들 수는 이처럼 천문학적이어서 많아 복잡해보이지만 사실 핵심 주인공만 이해하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바로 ▲ 해운사 ▲ 포워딩업체 ▲화주 등이다. ‘화물운송을 ‘해외여행이라고 가정했을 때 해운사는 항공사, 포워딩업체는 여행사, 화주는 여행객이다. 여행객은 여행사를 통해 티켓을 구매하고 여행을 다녀오는 것처럼 화물 운송 역시 화주가 포워딩업체를 통해 선사에 짐을 실어 해외로 보내는 구조다.
지금도 전세계 해상엔 셀 수 없는 컨테이너선들이 화물 운송을 하고 있다. 이들 중 절반 가까운 물량은 15개 선사가 담당한다. 그야말로 빅 15가 글로벌 물류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점유율 15.4%를 차지하는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에서부터 한진해운(11위), 현대상선(14위) 등 상위 15개사가 보유하고 있는 선박은 3039척이고, 선복량은 1629만 5505 TEU에 달한다.
그러나 글로벌 물류시장에서 해운사가 담당하는 부분은 극히 일부다. 수출업자가 자신의 물건을 배에 싣기 전까진 육상운송은 물론 중간 창고, 항만시설을 거쳐야하고 각 고, 각 절차마다 다양한 협력사들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들 중 한 군데라도 제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물류시스템은 무너지게 된다.

◆ 주인공은 화주-포워딩사-해운사
화주인 국내기업 A회사가 냉장고 100대를 미국에 있는 B회사에게 보내는 과정을 보자. A기업은 포워딩업체인 Z사를 통해 선적 스케쥴을 확인하고 적절한 해운사를 정하게 된다. 이때 선정된 해운사 C사는 Z사에게 BL(선하증권)을 주게되고, Z사는 이를 다시 A사에게 준다. BL은 발송자와 수신자, 어떤 비용까지 지불했는지 등을 표기하는 일종의 영수증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BL은 운송 과정에서 사고가 나는 등 문제가 생길 경우 화물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중요한 문서”라며 수출업자는 적당한 시기에 BL을 수입업자에게 줘 화물 소유권을 넘긴다”고 설명했다
A사의 냉장고를 B사로 보내는 모든 과정을 일임받은 포워딩업체 Z사는 육상운송업자에게 의뢰해 A사 공장에서부터 트럭이나 기차를 이용해 항만 창구로 냉장고를 운반한다. 물론 이때 창고 대여비를 내야하는데, 통상적으로 A사가 Z사에 낸 비용에 포함돼있다.
항만에서 화물을 배에 싣는 순간부터 해운사의 의무가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선적화물에 대한 책임은 도착지 항구에 짐을 내려놓을 때까지이지만, 계약에 따라 수신자에게까지 배달해주는 경우도 있다. 일명 ‘도어서비스란 제도다. C사가 운반한 화물이 정상적으로 항구에 도착한 뒤 B사에게 전달되면 화물운송은 종료된다.
◆ 영향력 무시할 수 없는 수 만명의 조연
한진해운 물류대란의 핵심 포인트는 현재 실려있는 화물들이 제 갈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해운업계가 공급과잉 상황에서 전세계 화물의 3% 가량을 담당하던 한진해운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실제로 여러 글로벌 선사들이 한국 화주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한진해운 물류대란의 문제는 하역작업 과정에 있었다. 지금처럼 한진해운의 짐을 하역하는 일을 이 회사들이 하지 않을 경우 화물은 제 시간에 수신자에게 도달될 수 없어 전세계 화주들의 짐이 바다 위에 기약없이 표류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박이 항구에 도착해 짐을 내리는 이 작업을 해운사가 직접하진 않는다. 배가 항구에 제대로 정박할 수 있도록 줄을 잡아주는 일명 ‘줄잡이업체에서부터 짐을 배에 차곡차곡 싣는 ‘라싱업체 등 무수히 많다. 부산항에서만 하역업체는 249개사에 달한다. 한진해운이 전세계 항구 하역업체에 밀린 대금을 입금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하역작업을 요구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하역업체 뿐만 아니다. 배가 항구에 정박하면 배에 붙은 이끼를 제거하는 협력사, 배 위를 청소하는 협력사, 페인트를 칠해주는 협력사, 중소 정비 협력사 등 해운사와 관련한 협력사들이 무수히 많다. 한진해운은 이들에게 대부분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무수히 많은 협력사들이 작업 거부로 실력행사를 하고 있다.
하역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더라도 항만의 터미널업체들이 실력행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들 역시 한진해운으로부터 밀린 대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주들의 짐을 담보로 받지 못한 대금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한진그룹과 정부가 마련한 돈은 하역비용에 불과해 물류대란을 쉽게 마무리되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화주들이 직접 자비를 내고 배를 내리는 즉시 짐을 찾아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국제 화물운송의 세계는 그리 간단치 않다. 한진해운으로부터 수 개월째 터미널 비용을 받지 못한 터미널업자들이 화주들의 요구에도 짐을 내놓지 않는다면 ‘다(多) 대 다(多) 소송이 시작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롱비치항은 지금 한진해운 컨테이너로 꽉 차서 빈 공간이 없고, 부산도 한진해운 선박 30척에서 컨테이너를 내리면 말그래도 발디딜 틈이 없다”며 부산항에 짐을 내려야 할 다른 선박들이 짐을 내리지 못하는 제2의 피해, 제3의 피해도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 물류사고 발생시 법적 책임은
앞선 사례들은 글로벌 화물운송 과정을 단순화시킨 것이다. 실제 계약을 보면 상황이 제각각이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개별적으로 계약서를 뜯어봐야 한다. 한진해운 물류사태로 인한 피해사례 역시 계약 상황에 따라 법적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달라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해운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배 위에 화물이 실려있을 때다.
포워딩업체 관계자는 태풍 등 자연재해를 대비한 보험은 있지만 법정관리처럼 특수상황에 대해선 보험으로 커버가 안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화주는 보통 해운사와 직접적으로 계약하지 않고 포워딩업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계약을 맺는다. 즉 문제가 생길 경우 화주는 포워딩업체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해야 한다.
권성원 법무법인 여산 변호사는 포워딩업체는 화주가 청구하는 금액을 모두 물어줘야 한다”며 다만 실질적으로 발생한 화주의 손해가 모두 보상된다고 보긴 어렵고, 현금이 없는 포워딩업체 입장에선 청구비용을 감당할 여력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처럼 하역비를 낼 수 없어 짐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스테이오더(Stay Order)다. 쉽게말해 한국 법원이 외국 법원에게 법정관리 상태에 들어가 채무가 동결됐으니 배에 실려있는 화물 등 자산을 임의로 처리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다. 한국의 스테이오더 요청을 승인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일본 등이다. 그러나 중국, 파나마는 인정하지 않는다.
◆ 해운사의 경쟁력은 얼라이언스와 터미널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글로벌 정기선사들의 경쟁력은 얼라이언스와 터미널에서 나온다. 얼라이언스는 전세계 항구를 한 회사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글로벌 선사들이 모여 노선과 선박을 공유하는 체제다. 경쟁력 있는 얼라이언스에 속해야만 비용과 영업력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현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CKYHE, G6에 소속돼 있다. 한진해운이 기사회생할 경우 내년 4월부터 한진해운은 THE, 현대상선은 2M이란 얼라이언스 소속이 된다.
여기에 해운사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자산이 있다. 바로 각 항만에 터미널을 보유하는 것이다. 터미널은 하역 시스템부터 창고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해운사 입장에선 보다 유동적으로 화물 운송을 할 수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터미널은 보유한 해운사는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에 창고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하다”며 전 세계 항만에 있는 터미널 중 대부분을 해운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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