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산은 지원 이번주 넘기면 美시장 잃을수도"
입력 2016-09-07 17:11 

서울중앙지법이 7일 산업은행에 이번주 안으로 법정관리 기업대출(DIP금융·Debtor-In-Possession financing)을 요구하고 나면서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한진해운 최대 컨테이너 시장인 미국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법원이 먼저 행동에 나섰지만 정작 정부는 법원의 DIP금융 지원 요청에 대해 회사 정상화에 기여하지 못한다”며 사실상 거부 방침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해상 유랑 화물 문제를 조기에 풀기 위해서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돈 떼일 위험에 처한 선주·화주들이 배와 화물을 압류하는 것을 일단 막아둬야 한다. 일단 배를 뺏기면 화물을 되찾아 오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법원은 이같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미국, 일본 등 세계 주요 거점항구에 선박·화물이 억류되지 않는 ‘세이프존을 만들어 이미 선적된 물량을 소화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한진해운 71개 컨테이너 노선 가운데 북미가 차지하는 비중은 28%(20곳)로 가장 크다. 미국 압류를 막기 위해 법원은 2일 한진해운을 통해 미국 뉴저지 연방파산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해 7일 일단 승인 조치를 받아냈다.

◆미국 압류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DIP 필요
문제는 이게 9일까지만 유지되는 한시적 승인이라는 점이다. 미국 파산법원은 9일 추가 심리를 거쳐 최종 판결을 내린다. 법원 관계자는 미국 법원이 9일 오전 10시까지 미국 내 채권자 보호를 위한 자금조달계획을 세워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며 만약 신속한 DIP 금융이 제공되지 않으면 자금 조달계획을 제출하지 못해 미국 법원으로부터 우리 회생절차를 승인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6일 한진그룹이 자체적으로 조달하겠다는 1000억원은 물론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진그룹 자산을 담보로 저리 대출해주겠다는 1000억원 자금을 더해도 물류대란 해소에 크게 부족하다고 봤다.
주력 시장인 미국이 압류금지 구역(세이프존)으로 지정되지 않으면 한진해운은 최대 북미 거점에서 화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항구에 배를 대지 못하면 물류대란은 더 심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상 유랑 화물 하역을 위해 법원이 선정한 허브항만 중 3곳이 미국에 있어 미국을 잃으면 피해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논란의 핵심 DIP 금융은
하지만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은 법원의 DIP금융 지원 요청에 대해 회사 정상화에 기여할 수 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자금지원에 불과하다”며 사실상 거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에 법원과 한진그룹은 자체 조달 계획으로만 9일 미국 법원을 설득해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됐다.
법정관리 기업은 신용등급과 자산건전성이 낮아 정상적인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회생 가능성에 상응하는 높은 금리로 투자를 감행하려는 수요는 있기 때문에 고위험·고수익 개념의 DIP 금융이 존재한다.
이 DIP 금융에는 법원이 최우선 변제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다른 투자자에 비해 앞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예컨대 2011년 2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대한해운은 SC로위 등 외국계 금융사 5곳에 연금리 20%대 조건으로 8500만달러의 DIP금융을 조달한 바 있다. DIP금융 지원 주체가 옛 채권단인 경우도 있다.
미국 델타항공은 2005년 파산보호 신청 당시 GE를 중심으로 한 옛 채권단에서 17억달러 규모의 DIP금융을 지원받은 바 있다. 회생에 실패해 대출금 회수가 불투명해지는 것보다는 기존 채권에 앞서 우선적으로 변제받는 조건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진해운 법정관리 개시 이후 물류수송체계에서 벌어진 일부 혼란과 한진해운의 정상화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물류수송체계상의 혼란을 물류대란으로 보는 것 역시 원칙에서 벗어난 자금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과도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법원은 미국 GM 등 지원사례를 들어 DIP금융을 요청했지만 한진해운은 이미 외국에는 없는 자율협약 단계에서 그 논의가 끝난 셈”이라고 못 박았다.
◆9일 미국 최종 결정이 관건
용선료·하역비 등 한진해운이 못내고 있는 외상값(상거래채무)은 총 61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당장 문제가 되는 선적 화물을 하역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1700억원 필요하다. 한진해운 자체 조달금(1000억원)에 정부 저리 대출(1000억원)이 더해진다고 해도 빠듯하게 맞출 수 있는 자금이다.
여기에 미국 압류금지 조치가 발효되지 않으면 화물을 하역할 수 있는 주요 거점을 잃게 돼 문제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화물 유랑사태가 장기화하면 화주들 소송이 이어지며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해양수산부와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한진해운 운용 컨테이너 120만 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를 실을 수 있는 규모) 중 이미 선적된 화물은 41만 TEU에 달한다. 8281곳 화주가 짐을 맡겨 화물가액만 140억 달러(약 15조6000억원)로 추산된다.
9일 미국 법원 최종 결정이 물류대란 사태 해결 분기점이 되는 셈이다.
[김정환 기자 / 정석우 기자 /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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