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핵)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 전략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핵 선제 불사용 구상을 철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향후 동북아 안보에 미칠 파급력에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미는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 억제 구상을 정상 차원에서 공식 언급함으로써 북한의 추가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수위를 극대화하고 나아가 중국의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반대 기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고도의 ‘전략적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 수행차 라오스를 방문중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7일 한미 정상이 공개적으로 ‘확장 억제란 표현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고 향후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매우 의심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미국이 본토 수준의 방어 체계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우리 정부도 이를 사실상 용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전날 한미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우리 두 정상은 확장억제를 통해 강력한 억지력을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확장억제란 미국의 동맹국이 핵 위협 또는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과 재래식 전략 자산, 미사일 방어(MD) 시스템을 총동원해 방어한다는 개념이다. 한미 정상이 이를 직접 언급한 것은 북핵 능력이 핵탄두의 탄도미사일 탑재 등 최고도화에 이를 경우 북한 핵시설을 미군이 핵으로 타격하는 방안을 우리가 용인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정책은 한반도 사드배치에 대해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여권 관계자는 전했다. 여권 관계자는 미국이 핵우산 등 ‘확장 억제 전략을 한반도에 적용할 수 있다는 발언이 나올 정도로 현재 한반도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핵우산 등에 비해 한차원 낮은 수준의 사드 배치를 놓고 중국이 반대하는 것은 더이상 명분이 없다는 점을 한미 정상이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내 분위기도 ‘핵무기 선제 불사용 구상을 거둬들이는 분위기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핵없는 세상이라는 자신의 공약을 완성하는 차원에서 최근 ‘핵무기 선제 불사용 선언을 진지하게 검토해 왔다. ‘핵무기 선제 불사용은 적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먼저 핵을 전쟁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속으로 지난 7월 워싱턴포스트(WP)가 오바마 대통령의 핵정책 변화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공론화됐다. 하지만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도 등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억지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주장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은 미국 정부의 외교·안보 진용이 ‘핵무기 선제 불사용 구상을 포기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한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핵무기 선제 불사용 선언이 한국과 일본 등 미국의 동맹국들의 안보를 위협하는 반면, 동아시아지역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입지만 강화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미국이 ‘핵무기 선제 불사용 선언을 할 경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이를 미국의 억지력 약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반드시 북한 핵무기에 대한 대응이 아니더라도 북한이 생화학무기 사용을 시도할 경우 핵 대응으로 맞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과 어니스트 모니즈 에너지장관도 가뜩이나 미군 철수를 위협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 때문에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핵무기 선제 불사용 선언까지 나온다면 우방들의 불안이 가중될 것이라고 가세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핵무기 선제 불사용 선언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유혹을 촉구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발트해에서 남중국해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와중에 미국이 핵우산 약화 신호를 보낼 경우 한국과 일본의 핵무기 보유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확장억제 정책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군비 경쟁 완화로 이어질 것이란 견해도 나온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미 정상의 ‘확장 억제 공개 발언이 오히려 한국과 일본의 독자 핵무기 무장 의지를 누그러뜨리고 역내 군비 확장 움직임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 전 장관은 각국이 군비 증강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핵위협 등의 안보 불안감 때문”이라며 양국 정상의 발언은 그 불안을 불식시키려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비엔티안(라오스) = 남기현 기자 /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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