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여군의 날 앞두고 레인저 휘장 단 ‘쎈언니들’
입력 2016-09-05 15:27 
왼쪽 이세라 중사, 오른쪽 진미은 중사 [사진=육군제공]

야생동물은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 얼어죽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새 조차 자신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는다.”
1990년 대 헐리우드 영화 ‘G.I 제인에서 미국 최초 여군 특전사에 도전한 주인공 데미무어에게 훈련교관이 시집을 선물하면서 밑줄 쳐 준 싯구다. 여성 특전사 후보를 바라보는 동정과 편견의 벽을 스스로 넘어서라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영화처럼 그 누구의 동정과 편견을 거부하고 스스로 한계의 벽을 넘어선 ‘쎈언니 2인이 탄생했다.
제 66주년 여군의 날(9월 6일)을 나흘 앞둔 지난 2일 전남 화순군 육군보병학교 ‘유격전문가 과정을 처음으로 통과하고 전투복 오른쪽 팔에 ‘레인저 휘장을 붙인 여군은 이세라 중사(28·2기갑여단)와 진미은 중사(29·3사관학교)다. 평상시엔 유격훈련에서 교관 임무를, 유사시엔 적 지역 또는 적과 가장 인접한 지역에서 정찰대 임무를 수행하는 레인저는 여태껏 남자 군인의 전유물이었다.
이들은 군인으로서 배려받기 보다 인정받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진 중사는 전쟁이란 극한 상황이 남자와 여자에게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내 아이, 부모를 스스로 지키고 싶다는 열망은 남성 못지 않게 여성도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격전문가 과정은 남자들도 혀를 내두르는 그야말로 한달간의 지옥훈련 과정이다. 각종 무기 훈련을 비롯해 헬기 레펠, 하천도하 등은 기본 중 기본이다. 특히 마지막 주 실제 적지 침투상황을 가정해 이뤄지는 4일 코스는 지옥훈련의 클라이막스다. 저고도 헬기 이탈, 수상 은밀 침투, 하천 장애물 극복, 매복, 습격 등 각종 유격 전투 기술이 1분 1초 휴식시간도 없이 이어진다.
진 중사는 25kg 군장을 매고 맨 손으로 절벽을 오를 땐 어깨가 부서질 것 같았고, 하루 종일 길이 나 있지 않는 산을 헤맬 땐 발바닥이 잘려 나가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4일 동안 잠이라곤 산에 매복해 모포를 덮고 쪽잠 잔 게 전부였다.
두 여군 중사를 인내의 극한으로 몰아넣었던 것은 닭과 산토끼를 잡아 끼니를 해결하는 ‘생존술 훈련이었다. 이 중사는 닭과 토끼를 해체해야 하는 데 처음엔 차마 죽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목이 잘린 닭을 멍하니 잡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진 중사는 하지만 당장 나를 따르는 병사들을 먹여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토끼를 손질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두 중사와 같은 팀에 있었던 이정규 하사(24)는 처음엔 여군이라는 점을 의식했지만 훈련이 거듭된 후엔 그냥 전우가 됐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진 중사는 초등학교 3학년 아버지를 여의었다. 학창 시절 내내 육상 선수로 활동했지만 어머니 만류로 대학원으로 진학해 교육자 길을 걷기도 했다. 그러나 진 중사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괴로웠다고 한다. 그때 우연히 여군모집 포스터를 보고 27살의 늦은 나이에 입대를 택했다.
스스로 고생길을 선택한 딸을 만류한 것은 이중사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이 중사는 체육대학에 진학 후 졸업직전 부모님 몰래 입영신청서를 냈다고 한다. 딸들이 유서까지 미리 써 내고 임해야 한다고 알려진 위험한 유격코스에 도전할 땐 반대가 극심했다. 매일 저녁 딸들의 무사만 기도했던 부모님들은 유격과정 통과소식을 받고선 자랑스럽다. 이제 나도 발뻗고 잘 수 있겠다”는 문자 한통을 보냈다.
이 중사와 진 중사 역시 이제야 부모님께 내 꿈을 인정받았다”는 감격에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은 도전이 아직 망설이고 있는 다른 여군후배들과 한국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진 중사와 이 중사는 군복만 입는 군인이 되기보다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군인이 되기 위해 더욱 단련하겠다”며 향후 최정예 전투원 과정 도전 의사를 밝혔다.
[서울 = 황순민 기자 / 전남·화순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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