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지난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아일랜드 정부로부터 불법적인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은 혐의로 애플에 130억 유로(16조2000억원)에 달하는 사상최대규모의 세금 추징을 명령했다. 하지만 정작 16조원이 넘는 막대한 세수를 챙기라는 EC 조치에 대해 아일랜드 정부가 거부의사를 밝히고 애플과 미국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거센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달 31일 파이낸셜타임즈(FT) 등에 따르면 아일랜드 정부는 EC 결정을 거부하고 EU 법원에 항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마이클 누난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집행위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며 항소를 통해 아일랜드 세제가 온전하다는 점을 인정받고 기업들에게 세제의 확실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누난 장관은 아일랜드 세제는 예외없는 엄격한 법 적용 기반 위에 서 있다”며 집행위가 회원국 고유의 세정 권한까지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C가 추징을 명령한 130억 유로는 지난해 아일랜드 예산(485억 유로)의 26.8% 수준으로 헬스케어 전체 예산과 맞먹는다. 애플로 부터 세금을 추징해 국민들에게 나눠줄 경우, 한 사람당 2825유로(352만원)가 돌아갈 정도로 막대한 규모다. EC 결정을 따를 경우 막대한 재정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정부가 집행위 결정에 불복하고 나선 것은 자국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기업들의 엑소더스를 촉발시켜 일자리·투자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다. 아일랜드는 그동안 낮은 법인세율로 다국적기업들의 투자를 유치,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도모해 왔다. 아일랜드 법인세율은 1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중 가장 낮다. 이처럼 세율을 낮게 유지한 덕에 1000개가 넘는 다국적 기업들이 아일랜드에 진출해 있다. 이들은 2014년 한해동안 1만82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아일랜드 고용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애플도 발끈하고 나섰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애플 고객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우리는 특별 대우를 요구한 적도, 받은 적도 없다”며 이번 결정이 유럽의 법적 안정성에 치명타를 가하고, 유럽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애플은 아일랜드 정부와는 별도로 EU법원에 항소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도 강력 반발했다. 미국 재무부는 집행위 결정이 내려진 뒤 불공정한 조치로 유럽에서의 외국인 투자와 기업 환경은 물론 미국과의 경제 동반자 정신도 약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백악관도 국제사회에서 공정한 조세 시스템을 만들려는 미국과 유럽의 공조가 약해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외신 보도에 따르면 애플이 부담해야 할 세금 규모는 이자를 포함할 경우 190억 유로(약 23조65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애플과 아일랜드 모두 항소 의사를 밝힌 만큼 당장 세금을 납부할 필요는 없다. FT는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는 수 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반발을 예상했음에도 EC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세금추징을 결정한 것은 다국적 기업의 세금 회피꼼수를 더이상 간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것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애플외에도 다른 다국적 기업들도 조마난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EC는 맥도날드와 아마존이 각각 룩셈부르크 조세 당국과 한 세금 합의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두 기업은 이중과세를 막기 위해 기업이 이익을 자회사로 이전할 수 있게 한 제도를 악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EC가 이들 기업들에게도 세금을 추징할 경우 EU와 미국간 갈등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내에서는 이번 사태를 세제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미국 기업의 세금 회피를 막고 더 많은 이익을 본국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더 많은 미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며 이번 결정이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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