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밀레와 안규문 사장의 아름다운 이별
입력 2016-08-09 11:11 

20대의 패기만만했던 청년이 이제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됐네요. 직장인으로서 40년을 보내고 정년을 맞는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지 오래됐다. 정년퇴직 때까지 직장을 다니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내달 28일 만 65세로 정년퇴직을 하는 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64)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밀레는 대한민국 주부라면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갖는 독일의 가전제품 브랜드다. 세탁기와 냉장고 청소기 커피메이커 등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제품들을 생산한다. 안 대표는 밀레 한국법인 설립 전부터 이 곳을 맡아 14년간 이끌어왔다.
1977년 당시 종합상사이던 쌍용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쿠웨이트와 미국 태국 등에서 해외 생활을 했습니다. 그 덕에 글로벌 감각을 익혔고 이것이 밀레에서 장수한 비결이 된 것 같습니다.”
전세계 주요 국가에 법인을 둔 밀레는 통상 3~4년에 한번씩 수장을 바꾼다. 특히 주요 국가의 현지법인장은 대부분 독일 본사 인력을 파견한다. 하지만 안 대표는 이를 모두 예외로 만들었다. 2005년 밀레가 기존 거래선을 인수해 한국에 정식 법인을 세울 때 계약조건의 하나로 ‘안 대표를 현지 법인장으로 임명할 수 있게 거래선이 도와줘야 한다를 조건을 붙였을 정도다.
그는 화려한 마케팅보다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조금씩 조금씩 시장을 확대한 점을 독일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밀레코리아 대표가 된 뒤 급격히 제품 매출을 늘리기보다는 ‘믿고 쓸 수 있는 제품이라는 밀레의 이미지를 국내 소비자에게 심어주는 것을 먼저 했다. 이를 위해 백화점 판매직원과 애프터서비스(A/S) 수리기사 모두를 정직원으로 채용해 서비스의 ‘질을 높였다. 고객이 요청하기 전에 수리기사가 먼저 찾아가는 ‘비포 서비스 등은 밀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밀레는 한 번 구입하면 20년 이상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현재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장수기업이 됐다. 이러한 밀레의 철학을 안 대표는 한국시장에 요령있게 적용했고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밀레는 사랑받는 브랜드가 됐다. 독일 밀레 본사에서 새로운 해외 법인장을 임명할 때마다 ‘한국의 미스터 안을 먼저 만나라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시장을 잘 꾸려온 안 대표에 대한 밀레의 고마움은 각별하다. 그를 위한 별도의 송별자리를 만들었고 이를 위해 독일 본사의 마르쿠스 밀레 회장이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찾는다.
안 대표는 장인정신(마이스터 제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일 기업은 신뢰와 의리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밀레 회장이 의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웃었다.
정년을 마진 행복한 직장인의 퇴직 후 생활은 어떻게 될까.
안 대표는 아내는 퇴직하고도 제가 일을 할까 걱정돼 무조건 한국을 뜨자고 한다”며 일단 미국에 있는 딸 집에 당분간 머무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의 딸은 안선주 조지아대 교수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석·박사를 마친 안 교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상현실(VR) 관련 전문가다.
딸네 집에서 외손자도 보면서 느긋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인생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일단은 잘 쉬고 싶어요.” 미소를 듬뿍 머금은 채 스마트폰에 저장된 손자 사진을 보여주는 안 대표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잔뜩 묻어났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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