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해외에선 와달라는 한국 원격의료, 국내서는 찬밥
입력 2016-08-04 17:03 

지난주에는 없었는데 빨갛게 피부 발진이 있습니다. 캡쳐해 드릴까요?”(간호 조무사)
스코프 렌즈를 다른 것으로 바꿔서 멀리서 좀 비춰주세요. 네 그렇게”(의사)
충남 서산에 위치한 효담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최용해(81) 할머니는 고혈압과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다. 보통 요양기관에는 촉탁의가 2주에 한번 방문해 환자들의 건강을 돌본다.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2주는 이곳저곳 아픈 곳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꽤 긴 시간이다.
하지만 이 병원에 지난해 5월부터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도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환자들은 1주일에 한번씩 시간을 정해 원격의료 시스템을 통해 촉탁의를 만날 수 있게 됐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2일, 최 할머니의 방에는 모니터와 질환부위를 자세히 비출 수 있는 영상기기인 스코프 등 원격의료 장비들이 설치돼 있었다.
방이 좀 더운가요?”(의사) 네 요즘 날씨가 더워서···”(간호조무사) 덥고 습하면 발진이 생길 수 있으니 병실을 시원하게 해주시고, 마사지와 수분 섭취도 충분히 해드리세요.”(의사)
대화를 할 수 없는 최 할머니를 대신해 간호조무사가 의사와 대화하며 이날의 첫 진료가 마무리됐다. 다음 환자인 유정순(86) 할머니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환자다. 지병으로 관절염과 당뇨가 있는 유 할머니는 이날 무릎 통증과 혈당 관리에 대해 문의했다. 간호 조무사의 도움을 받아 태블릿PC로 식후 혈당 측정치를 보내고 당뇨약 처방을 받았다. 다행히 혈당은 잘 관리되고 있어 안심해도 된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하지만 유 할머니는 무릎이 많이 아파. 쑤셔”라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의사는 무릎 움직일 때 소리가 나는지 보고 물리치료실에 옮겨 진료를 계속하자”고 대답했고, 간호조무사의 도움으로 30분여 물리치료를 받은 유 할머니는 그제서야 환히 웃으며 선생님이 자상하고, 멀리 안나가서 참 편리하다”고 말했다.
정혜선 효담요양병원 간호관리부장은 시범 사업 중 중이염을 앓고 있던 할머니를 스코프를 통해 조기에 발견해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정 부장은 누워 계시는 환자가 많아 한번 병원을 가려면 직원 3~4명까지 필요하고 의료기관까지 왕복 이동시간은 차량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원격의료 덕분에 편하게 의사의 진료는 물론 처방전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지난해 4월부터 인천, 충남 지역 노인요양시설 6개소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참여했던 노인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해보니 88%의 높은 점수가 나왔다. 요양원 관계자 90.0%도 전반적인 건강관리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이에따라 복지부는 올해 전국 요양시설을 대상으로 촉탁의와 의료인(요양시설 간호사)간 시범 사업으로 원격진료를 확대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원격의료 서비스는 이미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높은 기술적 수준을 갖췄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KT 세브란스병원은 르완다에 원격의료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지난달 21일 협약서를 체결했다.
페루, 칠레, 브라질, 중국, 필리핀, 멕시코, 몽골 등 8개 국가와도 MOU를 맺었고, 페루, 필리핀, 몽골 등 3개국과는 현지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페루는 길병원이 까예따노병원과 취약지 1차 보건기관 간 원격의료 시스템을 구축해 오는 10월부터 산전관리와 고위험 산모 응급이송 등 시범사업도 예정돼 있다. 최근 MOU를 체결한 몽골에서는 국내에서 치료받은 몽골환자들이 귀국한 후에도 원격으로 사후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사후관리 서비스센터가 몽골에서 운영될 계획이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선 원격의료가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시범사업 이외의 지역에서 의사가 환자를 원격의료를 통해 직접 진료하고 처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최고의 인터넷 환경에도 야당과 의료계의 반대로 19대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지 못했다.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대형 종합병원으로 환자들이 쏠리게 된다”면서 다수의 의사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원격의료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가 의료인은 물론 노조로부터도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런 현실과 법에 가로막히다 보니 원격의료 발전에 도움이 될만한 임상 경험 등의 빅데이터 생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외에서 시작하는 사업에서 오히려 경험을 축적하고 그 경험을 역으로 수입해 오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복지부는 지난 6월 20대 국회에 원격의료 관련 법안을 다시 제출하고 재추진에 나섰지만 성사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복지부 관계자는 원격의료를 통해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을 보다 강화하고 건강수준을 제고할 수 있다”며 중소 의료기기 업체 등 관련 산업의 활성화에도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서산 =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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