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 핵심들이 전당대회 출마를 고사한 데 이어 지난 총선 새누리당 공천 개입 의혹을 몰고 온 녹취록 공개로 친박계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동시다발적인 폭로전에 주요 인사들이 정치적 상처를 입은 탓에 계파의 보폭 자체도 좁아졌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계파의 분화를 넘어 와해의 우려까지 제기될 정도다.
친박계가 흔들리게 된 계기는 최경환·윤상현 의원이 공천 개입 의혹을 시사하는 녹취록이 보도되면서다. 특히 전당대회 직전 계파 갈등 해소를 위해 ‘백의종군을 강조했던 최경환 의원은 정치적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됐다. 녹취록 내용이 경기 화성갑에 나서는 김성회 전 의원에게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과 경쟁을 피할 것을 권하는 내용이라 ‘병풍 역할론을 내세웠던 서 의원도 체면을 구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서 의원은 20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괴감을 느끼고 오래 정치를 하면서 별꼴을 다 본다”며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앞으로 만약 이런 공작 냄새가 풍기는 일들이 (또) 벌어진다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친박계의 가장 큰 타격은 이제 마땅한 당권주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누가 나서더라도 ‘친박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승산이 낮다는 관측도 팽배하다. 한 친박계 의원은 집에 큰 불이 났다”며 어디서터 잡아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불”이라고 현재 상황을 평했다. 내부분열의 기미도 보인다. 우선 서청원·최경환 의원이 나서지 않는 이상 친박계 중진 홍문종 의원을 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 의원도 이같은 추진설을 부인하진 않았다. 이날 본회의 직전 기자들과 만난 그는 집(당)이 어려우니 외면해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며 (당 대표 경선)출마를 고심하고 있다. 51대 49”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박계 내부에 홍 의원을 마뜩찮아하는 기류가 부담이다.
이 때문에 범친박 이주영 의원을 밀어야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청원 추대설로 선거인력을 상당수 뺏겼던 이 의원 캠프는 서 의원이 불출마를 확정하자, 친박계를 아우르는 동시에 비박계에 대한 비판 강도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이 의원 측은 이주영 의원이 2일 정론관에서 오세훈·원희룡 등 전·현직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뭉쳐서 중앙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새로운 계파 갈등을 유발한다고 비판 성명을 낼 것”이라고 전했다.
역시 당 대표에 도전하는 범친박계 이정현 의원은 이날 경선이 20여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국민과 당원들은 후보들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며 ‘깜깜이 경선으로 규정한 뒤 후보자들의 난상토론을 제안하며 친박계 혼란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확실하게 힘이 실리는 후보군을 추대하지 못한 친박계 내에선 이제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친박계 한 재선 의원은 친박계가 변하지 않으면 붕괴만이 남았다는 우려감이 팽배하다”며 이제 친박계도 분화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 의원들이 지역별로, 친소별로 힘을 합치돼 과거처럼 떼를 지어 몰려다녀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친박계의 와해가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전당대회 이전부터 친박계가 이렇게 흔들린다면 계파는 물론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친박계 위기론이 부상하지만 상황이 비박계에 꼭 유리하지는 않다는 평가도 적지않다. 승기를 잡았다고 여기는 비박계 당 대표 도전자들이 그동안 외쳐오던 단일화에 오히려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서다.
우선 서청원 의원이 나오면 맞불을 놓겠다던 나경원 의원은 이날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정병국·주호영·김용태 의원은 친박계 공천 개입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갈 뿐 자체 교통정리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특히 정 의원은 이날 여권 대선후보 급으로 꼽히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만나 지지를 부탁하려 했지만, 오 전 시장은 ‘단일화 이후 협력을 내세우며 만남을 연기했다. 오 전 시장은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서울 종로 당협위원장으로 만나는 건 자칫 치우친 선거운동으로 비칠 수 있다”라며 누구는 먼저 만나고, 누구는 나중에 만나는 것 적절치 않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우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명환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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