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터키 군부쿠테타] 3000명 체포·해임…사형제 부활 논의까지 `피의 숙청` 예고
입력 2016-07-17 17:03 

지난주말 터키를 뒤흔든 군부 유혈 쿠데타는 300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낸 끝에 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쿠데타 실패로 터키 세속주의(정교분리) 수호자 역할을 자처해왔던 군부 입지는 확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2013년 에르도안 부자가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을 받은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촉발됐던 터키 민주화 시위로 흔들렸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군부숙청을 무기로 권력기반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그가 추진해온 반세속·이슬람 전통주의 정책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 실패를 선언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 세력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한뒤 사형제 부활까지 거론되는 등 대대적인 피의 숙청 작업이 펼쳐칠 개연성도 커지고 있다. 피의 보복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 커지면 최근 수년새 이라크, 시리아,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을 집어 삼킨 정정불안이 터키로 전염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군부 쿠데타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력장악으로 축출 위기에 몰린 군부 세력이 에르도안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시도한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한때 정치적 동지였던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과 2013년 비자금 부패수사를 계기로 결별한 후 귈렌을 추종하는 세력을 정계, 법조계, 언론계, 군부에서 대부분 몰아냈다. 터키 각계에서 귈렌 추종세력은 대부분 권력을 잃었지만 군부에는 지지그룹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부 일부 세력이 자신들의 처지가 점차 위태로워지자 에르도안을 몰아내려고 이번 쿠데타를 주도했다는 게 에르도안 대통령의 설명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군부로 대표되는 세속주의 세력과 에르도안으로 대표되는 근본주의 세력간 세력 다툼이 표면화된 결과물이 이번 쿠데타라는 시각도 있다. 종교지도자인 귈렌이 쿠데타 배후로 지목되는 이유는 그가 터키내 온건 이슬람주의 지도자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터키는 지난 1923년 군 사령관 출신인 무스타파 케말이 오스만제국 술탄 시대를 끝내고 공화국을 선언하며 국가 통치를 위해 정교 분리 세속주의를 헌법에 명시했다. 이후 터키 군부는 세속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 터키 헌법에도 군이 ‘국가 수호자로 표현돼 있어 정치에 개입할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종전 헌법에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명시적인 조항도 있었다. 과거 쿠데타 세력은 합동참모본부와 육·해·공군이 합의해 쿠데타를 예고한뒤 집권당을 축출한 뒤 2∼3년 후 민간에 권력을 이양해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총리에 취임한 후 헌법을 바꿔 대통령에게 권한을 몰아준 뒤 2014년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고 이슬람주의를 국정의 맨 앞에 세웠다. 그는 한 때 ‘종교적 불관용을 선동하다 공직에서 쫓겨날 만큼 친이슬람 성향을 보였고 집권 후 세속주의 원칙을 잇따라 사문화했다. 과도한 이슬람주의에 입각한 여성차별도 횡행했다. 여기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재와 부패도 쿠데타 발발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부패와 독재는 집권기간이 장기화 할 수록 극심해지고 이를 비판하는 언론에 대한 탄압도 거세졌다. 2013년 5월 에르도안 정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 일어나자 터키 정부가 이를 강제 진압해 22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번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것은 과거와 달리 군부 전체가 합의한 쿠데타가 아니였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 쿠데타는 공군이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육군은 일부만 가담하는데 그쳤고 해군은 거의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출신인 훌르시 아카르 터키 참모총장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공군기지에 억류됐지만 16일 오전 구출됐다. 쿠데타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도 실패 이유다.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에 따르면 현재까지 쿠데타와 관련해 265명이 사망했고 이중 161명이 경찰 및 민간인이었다. 국제사회 역시 쿠데타 세력에 등을 돌렸다. 에르도안 정부가 독재를 지속하고 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쿠데타 자체를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 독일 등 각국 정부는 일제히 성명을 내놓고 터키 정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뉴욕타임즈 등 외신은 쿠데타 세력은 군부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쿠데타가 성공할 것이다는 믿음을 주지 못 했다”며 결과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 정치를 장악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쿠데타가 반나절도 안 돼 종결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권력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미국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의 헨리 바키 중동지역 담당 연구원은 에르도안은 쿠데타 실패후 형성될 군부에 대한 반발심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외신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대대적인 숙청 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쿠데타 발생 당시 휴가 중이었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16일 새벽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연설을 통해 (쿠데타 관련자들은) 반역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도 터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헌법재판소와 정당들이 사형제 부활이 합리적인지를 놓고 논의를 하는 자리가 있을 것”이라며 터키에서 금지된 사형제의 부활 가능성을 거론했다. 터키 정부는 군부 쿠데타를 빠르게 진압하며 3000명 가까운 쿠데타 세력을 체포했다. 쿠데타 주모자로 알려진 전직 공군 사령관 아킨 외즈튀르크와 육군 2군 사령관 아뎀 후두티 장군, 제3군 사령관 에르달 외즈튀르크 장군 등 2839명에 달한다.
쿠데타 후폭풍은 군부 뿐 아니라 사법부에도 불어닥쳤다. 터키 당국은 알파르슬란 알탄 헌법재판관을 체포하고 쿠데타 시도와 관련해 터키 전역의 판사 약 2745명을 해임한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눈 쿠데타 세력을 엄히 다스리겠다고 밝힌 만큼 판사의 해임을 넘어서는 ‘숙청 피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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