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멋있음 대신 ‘웃음을 택한 용기 있는 자들이 꿈꾸는 코미디는 어떤 모습일까요? 웃음 뒤에 가려진 이들의 열정과 고통, 비전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편집자 주>
[MBN스타 유지혜 기자] 이젠 ‘개그도 못하는 세상이 왔다. 개그의 핵심은 풍자와 해학이다. 풍자가 담긴 개그를 했다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던 개그맨이 경찰서에 출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으니 말이다.
이상훈은 지난 달 30일 오후 2시, 지난 5월 어버이연합이 명예훼손으로 그를 고소한 사건에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영등포경찰서에 출두했다.
지난 5월12일 어버이연합은 이상훈을 명예훼손 혐의(형법 제307조)로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이유는 어버이날인 지난 2016년 5월8일 방영된 KBS2 ‘개그콘서트에서 이상훈은 어버이연합의 명예를 훼손하는 대사를 했다는 것.
당시 ‘개그콘서트에서 이상훈은 계좌로 돈을 받기 쉬운 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정답인 가상계좌 대신 어버이연합”이라고 대답한 후 어버이연합은 가만히 있어도 계좌로 돈을 받는다. 전경련에서 받고도 입을 다물고 전경련도 입을 다문다”고 말했다.
그의 경찰서 출두 소식에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국민에 웃음과 시원함을 주기 위해 풍자를 해야 하는 개그맨이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소를 당해야 하는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거다.
개그계도 침통한 분위기다. 한 방송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개그맨들이 어떤 사회 문제를 다룰 수 있겠냐”며 반문한다. 최근 개그 프로그램에 사회 비판과 풍자가 실종된 게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번 이상훈 소환조사 사건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며 개그계 인사들은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코미디언들은 그저 말장난으로 관객을 웃기는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풍자로 승화시켜 관객들의 답답했던 마음 한켠을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 또한 코미디언들의 임무다. 코미디언은 그렇기 때문에 중립을 지킬 수 없다. 누군가는 불편할지언정 촌철살인 풍자로 서민들을 위로하고 웃음을 줘야 하는 게 코미디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버이연합은 그런 ‘임무를 지닌 코미디언에 고소장을 날린 이유로 연예인으로서 어떤 사안에 대해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가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어버이연합에 대한 공연한 모독과 조롱으로 어버이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특정 다수에게 확산시킴으로써 어버이날을 맞은 어버이연합 회원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단체의 명예에 타격을 입혔다”고 말했다.
이상훈은 연예인이기 이전에 코미디언이다.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가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한다면 개그 무대에서 풍자는 전부 사라져야 한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가치중립이란 말이 ‘근무태만이란 단어와 같다. 도대체 코미디언에게 ‘가치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법칙은 어디서 튀어나온 법칙인 걸까.
예로부터 ‘광대는 왕 앞에서도 왕을 조롱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웃음으로, 해학으로, 풍자로 권력층에 ‘긴장을 안겨주는 역할이 바로 광대였다. 민심을 대변하며 사회 현상을 웃음으로 풍자하는 게 광대였고, 현 시대의 ‘광대는 바로 코미디언이다. 도대체 누가 그들의 임무와 특권을 빼앗으려 드는가. 정말 ‘개그도 못하는 팍팍한 세상, 개그를 했다가 경찰에 소환되는 ‘코미디가 따로없는 세상이 됐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