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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기획…성우의 현주소①] 성우들 위협하는 ‘전속계약 2년’의 비밀
입력 2016-06-20 14:15 
[MBN스타 유지혜 기자]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줄어가고, 신입 성우들의 트레이닝 기회인 전속계약 기간은 점점 짧아진다. 성우들이 ‘힘들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성우들의 설 자리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들이 부쩍 많이 들린다. 성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더빙 프로그램들이 상당 부문 사라졌고, 외화 더빙에는 탤런트와 예능인 등 다수의 스타가 대우를 받는 시대가 됐다. 2015년에는 45년 전통을 자랑하고 성우들의 ‘자부심으로 통했던 KBS ‘명화극장마저 폐지되자 더욱 위기는 심화됐다.

하지만 비단, ‘설 자리가 사라졌다는 말로는 성우들이 겪는 ‘위기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현직 성우들은 입 모아 ‘전속계약 기간에 대한 문제점과 ‘시청률로 재단되는 방송가의 현실을 지적하고 나섰다.



◇ 싫어도 2년 후엔 방송사를 떠나야 하는 성우들”

현재 성우들과 방송사 간의 전속계약 기간은 2년이다. 기간제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취지의 법인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즉 ‘기간제법 때문에 결정된 기간이다. 하지만 배우 겸 성우 장광, KBS 성우극회 회장인 강희선 성우 등 경력이 많은 ‘베테랑 성우들은 경쟁력을 갖추려면 적어도 5년 정도의 전속계약이 필요하다. 2년은 턱없이 짧다”고 주장했다.

한국성우협회 이근욱 이사장 또한 70년대에는 5년이나 되어야 제대로 ‘말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법제정이 바뀔 때에 성우들은 ‘2년은 절대 안 된다며 3년을 주장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기간제법을 이유로 결국 2년으로 전속계약 기간을 확정했다. 아무리 요즘 성우 지망생들이 각종 레슨을 받고 ‘밀착형으로 공부를 한다지만 전속계약 2년은 참 짧은 기간”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지금의 성우들은 2년이 지나면 무조건 방송사를 떠나야 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프리랜서들 간의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후배 성우들은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우들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짙게 나타난다.

물론 ‘잘하는 사람이 자리를 따내는 것이 무엇이 이상하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성우계의 근본을 뒤흔들 수 있는 위험한 현상이다.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성우들의 나이대는 40대 이상이다. 2030세대의 성우들은 거의 빛을 보기 힘든 체계다. ‘중간층이 사라진 셈이다. 원로 성우들은 ‘중간층의 실종이 성우의 입지를 좁아지게 만들뿐 아니라 후배 성우 양성에도 영향을 미쳐 마침내는 ‘공채 성우의 개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진=폐지된 명화극장과 "명화극장" 폐지를 외치며 1인 시위를 했던 시청자들 (제공=KBS 성우극회)


◇ 드라마 제작보다 훨씬 싼 더빙 외화, 왜 편성 안 되죠?”

성우들의 무대가 사라진 현상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현재 각 방송사의 편성표를 살펴보면 더빙이 필요한 애니메이션 등 성우들이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라디오에서도 라디오드라마 등이 성행하던 과거와는 달리, 드라마 형식의 프로그램은 사라졌다. 성우들이 뽑혀도 활용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특히 2015년 KBS ‘명화극장의 폐지는 성우들에게는 ‘충격이었다고. 이근욱 한국성우협회 이사장을 비롯한 몇몇 성우들은 시청률로만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처사가 너무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명화극장이 폐지될 때에는 프로그램의 팬들이 나서서 이를 반대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일 정도였지만 이 또한 묻혀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성우들은 물론 ‘수익을 내야하는 방송사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각종 드라마보다 10분의 1 수준의 제작비가 드는 더빙 외화 편성에는 왜 그렇게 인색한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드라마의 시청률도 10%가 넘지 않는 요즘 방송계에서 더빙 외화와 애니메이션이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폐지되는 현실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또한 외화 편성이 사라진 것 뿐 아니라 자막 방송도 급증했다. 시청자의 의견 반영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작비 절감 차원으로 자막이 급증한 경향이 있다고. 이근욱 한국성우협회 이사장은 이는 노인, 외국인 등 문화소외계층을 고려하지 않는 처사다. 나이 든 분들은 휙휙 지나가는 자막을 따라잡기 힘들다”고 말함과 동시에, 화제성을 위해 스타들을 내레이션, 더빙에 모시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캐릭터나 작품과 목소리가 잘 조화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이 스타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더빙은 작품에 오롯이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더빙을 문화의 한 장르로 받아들여줬으면”

이근욱 한국성우협회 이사장은 무엇보다 ‘더빙을 문화의 한 장르로 여기고, 문화소외계층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장르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명화극장이 49년 동안 하다가 사라졌다. KBS에서는 가장 오래된 프로그램이었는데 한순간 명맥이 끊긴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다른 선진국에서는 외화 더빙을 모국어 보호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더빙도 문화예술의 한 장르다. 수십 년 동안 해왔고, 전문인들이 행하는 ‘전문 장르다. 하지만 제작비가 많이 든다고 해서 마냥 프로그램들을 폐지시킨다면 이런 특유의 ‘문화를 없애는 것과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이 이시장은 다른 나라는 모국어에 대한 자긍심이 있고, 이 때문에 더빙도 고수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되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국회의원들과 심도있게 법 제정에 대해 논의를 한 적이 있다. 문화 장르의 보호와 모국어 보호, 문화적 다양성 등을 위해 더빙에 관한 법제정을 시도했지만 진척되지 못하고 결국 자동폐기됐다”며 좀 더 더빙 문화를 하나의 문화적 차원으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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