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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타임머신] ‘대부’ 이경규의 주름엔 ‘예능의 역사’가 있다
입력 2016-06-04 17:47 
디자인=이주영
1분1초가 빠르게 지나가는 요즘, 본방사수를 외치며 방영일 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날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클릭 한 번만으로 지나간 방송을 다운 받고, 언제든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빨리 흘러가는 현재, 지난 작품들을 돌아보며 추억을 떠올리고 이를 몰랐던 세대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MBN스타 유지훈 기자] 이경규가 개그맨으로 오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0년이 넘는 그의 방송 경력에, 이제는 ‘갓이라는 칭호까지 붙었다. 이정도면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개그맨이라고 불리기 충분하다.

이경규는 오는 7월1일부터 3일까지 서울 홍대 일대에서 제 1회 ‘홍대 코미디위크에서 단독 개그를 선보인다. 개그맨이 단독 개그를 한다는 건 당연한 일 같지만 이경규이기 때문에 조금 색다르게 다가온다.

30년 방송 경력은 이경규가 그동안 대한민국 예능의 변화를 몸소 체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수많은 트로피가 그의 능력을 뒷받침한다. ‘홍대 코미디 위크는 ‘예능 대부의 색다른 도전이자 ‘희극인으로서의 회귀다. 이 남자의 주름에는 대한민국 예능의 역사가 새겨져있다.

◇1991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몰래카메라

이경규는 1981년 ‘제 1회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개그맨이 됐다. 하지만 중국인 개인기를 잘 하는 21세 청년이었을 뿐 존재감은 미미했다. 1990년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인지도를 쌓은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프로그램을 만나게 됐다.

이경규는 1991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메인 진행자 주병진의 보조 MC를 맡았다. 그리고 ‘몰래 카메라라는 개인 코너를 가지게 됐다. 이 프로그램에는 조용필, 최진실, 고현정, 서태지와 아이들과 같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스타들이 출연했다.

이경규의 진행능력은 ‘몰래 카메라를 통해 인정받았고 당시 MBC 방송대상 코미디 부문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당시 많은 연예인들이 이경규만 봐도 뒷걸음질을 쳤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만큼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는 시청자에게는 물론, 연예계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1994 ‘오늘은 좋은날-별들에게 물어봐

이후부터 이경규의 앞날은 탄탄대로였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당시 최고의 주말 예능프로그램이었고 이경규의 인기는 치솟았다. 1992년 영화 ‘복수혈전이 실패했지만 이마저도 그에게는 개그 소재가 됐다.


예능인이었지만 1994년에는 희극인으로서도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그는 MBC ‘오늘은 좋은 날에서 ‘별들에게 물어봐라는 코너로 눈도장을 찍었다. 여기에서 이경규는 바보분장을 하고 등장, 조혜련의 질문을 별들에게 물어봐”라며 받아쳤고 그를 대표하는 유행어가 됐다. 90년대 초반 콩트 개그의 유행에는 이경규라는 굵직한 개그맨의 이름이 남게 됐다.

◇1996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가 간다

이경규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코너인 ‘이경규가 간다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본래 명사를 찾는 포맷으로 기획됐고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故김대중 전 대통령, 일본 진출에 성공한 야구선수 선동열, 김수환 추기경 등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내비쳤다.

이후 ‘이경규가 간다는 다양한 변화를 꾀했다. ‘양심 냉장고는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시민을 만나 냉장고를 선물했다. 횡단보도 앞 정지선 멈추기, 주류-담배 판매 시 신분증 검사, 뒤집어져 있는 쓰레기통 세우기 등 공익성에 중점을 뒀다. 이경규는 10시간이 넘는 촬영에 임하며 프로 예능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경규가 간다의 진화는 끝이 없었다. 대선 후보 면담을 비롯해 간간히 명사들을 찾아다녔고 1998년 월드컵 때는 이경규가 리포터로 변신, 현지 상황을 유쾌한 진행과 함께 생생하게 전달했다. 이후 월드컵 시즌이 되면 ‘일요일 일요일 밤에 제작진은 이경규와 함께 비슷한 포맷의 특집을 꾸몄다.

◇1999년 ‘전파견문록

이경규는 1998년 돌연 일본 유학을 선택했다. ‘이경규가 간다로 전국, 전 세계를 누볐고 10년 동안 쉴 틈 없이 달려왔던 자신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리고 방송에 복귀했고 이 역시 성공적이었다.

‘전파견문록은 1999년 MBC에서 선보인 주말 예능프로그램이다. 첫 방송 당시 토요일 오후 9시45분이라는 프라임 시간대에 편성됐다. 어린이들의 맑고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가족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다. 이경규는 특유의 유쾌한 진행으로 전 연령대 시청자들과 친숙해졌다. 이어 ‘느낌표 ‘대단한 도전 등에서 활약하며 인기를 과시했다.

하지만 MBC 예능프로그램은 200년 초반부터 하락세를 보였다. 프리랜서였지만 MBC가 주 무대였던 이경규에게도 큰 타격이었다.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꿈꾸며 선보인 ‘몰래카메라 2기 역시 소재 고갈로 막을 내렸고 ‘내 영혼의 밥상 ‘명랑 히어로 ‘퀴즈 육감대결 등이 줄줄이 폐지되며 이경규의 위기론이 대두됐다.

◇2009년 ‘남자의 자격

이경규는 KBS로 둥지를 옮겨 다시 한 번 재기를 꿈꿨다. 이경규는 2009년 KBS2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이라는 코너의 맏형이 됐다. 평소 두터운 친분을 쌓아왔던 개그맨 이윤석, 재기를 꿈꾸던 김국진, 부활의 김태원 등이 함께했다. 그리고 한마디로 이경규의 복귀는 성공적이었다.

‘남자가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는 콘셉트로 꾸며졌고 이경규는 멤버들과 함께 합창단, 마라톤, 배낭여행과 같은 미션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2010년 KBS 연예대상의 대상을 수상했다. 이경규는 ‘남자의 자격에서 자신의 공황장애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대쪽 같은 면모에 호통을 일삼던 이경규의 인간적인 모습은 ‘남자의 자격과 함께였던 셈이다.

◇2011년 ‘힐링캠프

2011년 SBS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의 MC로 나선 이경규는 여전한 입담으로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김재동과 티격태격하면서도 게스트의 진솔한 이야기에 경청할 줄 알았다. 결국 ‘힐링캠프는 폐지됐지만 이경규를 탓하는 사람은 없다. 1인 토크가 유행이었기에 만들어졌던 프로그램이었고 이경규는 자신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앞서 이경규가 위기설에 휘말렸던 당시 예능계에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번지고 있었다. ‘남자의 자격은 리얼 버라이어티 성이 짙었고 이경규는 이를 통해 재기했다. 이경규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 하차와 위기설은,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경규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당시 예능계를 주름잡았던 이경규에게 과도기 찾아온 과도기였을 뿐이다.

◇2016년 ‘마이 리틀 텔레비전

1인 미디어가 유행처럼 번졌고 방송국도 이를 차용한 예능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MBC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이라는 인터넷 방송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는 큰 호응을 얻었고 백종원, 모르모트 PD, 양정원과 같은 인물을 발굴해내고 있다.

이경규는 ‘킹경규라는 닉네임으로 ‘마리텔에 출연했다. 눕방(누워서 하는 방송), 낚방(낚시를 하는 방송), 말방(말을 타는 방송) 등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아이템이 이경규의 머릿속에서 쏟아졌고 3회 연속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온 몸을 던지는 이경규에게서는 짠하다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감탄을 살 뿐이다.

50대 중반 개그맨이 인터넷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은 분명 도전이다. 젊은 출연자들도 쉽게 소통을 하지 못해 구슬땀을 흘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경규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인 듯 보인다. 이경규는 이렇게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예능의 역사에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있다.

[변두리 퀘스천] 이경규의 다음 도전은 무엇일까요?


유지훈 기자 ji-hoon@mkculture.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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