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오바마, 히로시마 한국인 희생자 언급…외교 고려해 내린 결정
입력 2016-05-28 13:55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에서 '한국인 희생자'를 언급했습니다.

27일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헌화한 뒤 "10만 명 이상의 일본인 남성과 여성, 아이들, 수천 명의 한국인, 십여 명의 미국인 포로들을 애도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한국인 원폭피해 희생자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초 백악관 측이 연설문을 준비할 땐 '모든 무고한 희생자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려 했다는 후문입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대만인 피해자도 있었기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희생자를 언급한 것은 외교 관계를 고려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으로 해석됩니다.

이번 사안을 자칫 소홀히 다룰 경우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국인들의 정서를 또다시 자극할 가능성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사에 대한 아베 신조 정권의 태도에 강하게 비판해온 한국인들이 이번에는 미국이 과거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불만을 공개 표출할 가능성이 있고 그 경우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나아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고 대(對) 중국 견제구도를 만들기 위한 한·미·일 3각 안보협력 체제가 예기치 않게 와해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전략적 고려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과 일본에 있는 희생자 유족 및 시민단체, 언론에서 한국인 희생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한 점도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한국인 피해자가 2만여 명에 이른다고 추산되는 상황에서 '수천 명(thousands)'이라고 말한 점은 논란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외교소식통들은 "개인적으로 접촉한 미국 당국자들은 분명히 한국인 원폭 피해자가 2만여 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며 "thousands라는 표현에는 만 단위가 포함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일본인 희생자 숫자를 '10만 명 이상'(over 100,000), 미국인 포로 희생자를 '십여 명'(a dozen)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을 감안해볼 때 thousands라는 표현이 적절했는지에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에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외면하고 있는 일본 측의 논리와 입장이 투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장소인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에 있는 한국인 위령비를 찾지는 않았습니다.

애초부터 연설 이후 '짧은 투어'가 예고돼 있던 데다가 동선이 복잡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설명이지만,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과 위령비가 갖는 상징성 등을 감안해볼 때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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