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심사가 무기한 연장되는 이유로 미국의 2배나 되는 심사 기간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전문성 부족이 거론된다. 미국보다 권한은 더 많으면서 이를 심사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한 한국 공정위가 주먹구구식으로 심사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경쟁당국의 법정 심사 기한은 최장 120일로 미국(60일)에 비해 2배 더 길다. 이는 경쟁당국이 기업에 자료를 요구하고 받는 기간을 제외한 기간이어서 실제 기업결합 심사는 이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한국 경쟁당국이 미국보다 업계에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은 1차 대기기간(30일)과 2차 대기기간(30일)을 엄격히 구분한다. 그리고 1차 기간 내 경쟁당국이 특별한 흠을 잡아내지 못하면 기업 간 합병을 막을 수는 없다. 한국도 미국처럼 1차 대기기간과 비슷한 조항이 있었는데, 기업결합 심사 내실화를 기한다며 2012년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사라졌다. 그나마 '120일 이내'라는 규정을 두긴 했는데, 이것도 강제 사항은 아니다.
문제는 이처럼 심사에 오랜 시간을 쓰면서도 정작 더 중요한 전문성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인원은 총 1176명인데 그중 박사급 이상 경제학자는 79명(6.7%)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이 방송통신 자동차 등 전문 분야를 맡아 10~20년간 심사를 전담한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이들이 분석한 자료가 축적되면서 최근 FTC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기업결합 담합 사건 분석 등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공정위 규모는 530여 명이나 되는데 그중 박사급 이상 경제학자는 단 3명(0.5%)에 불과하다. 산하기관인 공정거래조정원을 포함해도 한 자릿수에 그친다. 이런 구조는 공채 출신 행정관료가 공정위 권한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관료들 특성상 2~3년 주기로 자리를 옮겨야 하다보니 전문성이 쌓이기 힘든 구조"라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업결합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시장분석' 영역은 상당수가 외부 용역으로 수행된다. 가령 지난해 공정위가 글로벌 물류업체 페덱스(Fedex)-TNT 기업결합 건에 대해 외부 용역을 준 것이 대표적 예다.
외부 용역으로 심사를 진행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보안 문제가 발생하고 심지어 공정위와 그 대척점에 있는 심사기업이 똑같은 교수에게 용역을 주는 웃지 못할 경우도 발생한다. 이 전문가는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경쟁당국 경제분석 능력이 부족한 편"이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같은 별도 독립연구소를 구성해 더 많은 박사급 인력이 기업결합, 담합 등 경제 현상과 관련된 분석을 전문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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