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병역특례 폐지 후폭풍] 가뜩이나 고급인력 없는데…中企도 ‘발등의 불’
입력 2016-05-17 16:23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전자부품 제조기업 N사는 지난해 7명이었던 산업기능요원이 1명으로 줄어들면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1명이 이직했고 5명이 소집해제하면서 생산직 총인원의 20%가 빠져나간 셈이다. 당장 새로운 인력을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산업기능요원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구하려면 지금 연봉으론 어렵다. 이 회사 대표는 고급인력 채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산업기능요원 등 병역특례 인력이라도 있어서 그나마 버텨왔다”며 병역특례 제도가 없어진다면 회사 운영이 힘들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병역특례제도 폐지 소식을 접한 중소·중견기업과 벤처기업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가뜩이나 대기업 편중이 심한 인력시장에서 병역특례는 중소기업들이 양질의 인재를 제공받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었는데 그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17일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해 병역대체복무제도를 통해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인원은 총 1만6206명에 이른다. 이중 석·박사 이상 전문연구요원은 총 2500명으로 이 중 855명이 중소기업에, 351명이 중견기업에 배정됐다. 이들은 중소·중견기업에 근무하며 회사의 핵심인 연구·개발(R&D) 업무를 주로 맡는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복무 후 대기업에 취업하기도 하지만 직접 창업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벤처기업 루닛의 백승욱 대표가 그런 사례다. 그는 본래 KAIST에서 회로설계를 전공했지만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병역특례로 근무하며 인공지능(AI)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대기업 취업 대신 창업을 택했다. 루닛은 딥러닝 기반 이미지인식 기술을 개발했고 이 기술로 지난해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국제 영상인식 대회(ILSVRC)에 참가했다. 루닛은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등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알파고로 유명한 구글은 6위였다. 백 대표는 병역특례가 없었다면 창업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성과도 없었을 것”이라며 병역특례는 이공계 고급인력을 창업으로 유도하는 좋은 제도”라고 말했다.

생산직에 종사하는 산업기능요원도 없어지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중기청에 따르면 올해 배정된 산업기능요원은 1만5000명이다. 지난해까지 8500명이었지만 입영적체가 심하다는 이유로 국방부가 올해 2배 가까이 늘렸다. 덕분에 중소기업은 단기적으로 인력을 수월히 구할 수 있지만 향후 갑작스런 인력공급 절벽을 맞이할 수도 있다. 중기청 관계자는 병역특례가 폐지된다면 당사자의 경력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기업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단체들도 예외 없이 병역특례 폐지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중기중앙회는 17일 성명서를 내고 병역특례제도 폐지는 중소기업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전면 재검토는 물론, 기술·연구인력 양성을 위해 오히려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규대 이노비즈협회장은 기업들의 현실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결정”이라며 국방부를 비판했다. 남민우 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 역시 병역특례는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를 선택하도록 만들고 창업열풍에 불을 지피는 의미있는 제도”라며 병역특례를 폐지하는 것보다 유지해서 얻는 경제적 효용이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반원익 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산업기능요원 배정 대상을 확대한다고 발표한 게 엊그제”라며 현장의 요구를 면밀히 살펴 제도폐지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순우 기자 / 진영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