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병역특례 폐지 후폭풍] “한국과학 사망선고”…이공계 엑소더스 가속화하나
입력 2016-05-17 16:22 

서울대 공대 4학년에 재학중인 A씨(23)는 국방부가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2019년도부터 폐지할 것이다”라는 방침을 세웠다는 이야기에 한숨부터 나왔다고 털어놨다. 연구실을 정하고 교수와 어떤 연구를 진행할지 논의하고 있는 과정에서 세운 계획이 송두리째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국방부안이 확인되자 주변 친구들 모두 군대부터 다녀와서 해외 석·박을 가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지방 소재 한 과기원 기계공학과 석사과정 중인 B씨(24)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다. 과기원의 경우 석사를 마치고 일정 과목을 수강하면 전문연구요원이 되어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 B씨는 박사 과정에 진학해 꾸준한 연구를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2019년까지 전문연구요원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안될 수 있기에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경제신문이 17일 단독 보도한 국방부의 ‘병역특례제도 폐지계획안에 대해 국내 이공계생을 비롯한 과학기술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 주제로 열린 제1회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대학을 기초연구와 인력양성 기지로 체질을 바꿔나가겠다”고 발표한지 불과 일주일만에 정부가 이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오락가락 정부, ‘갈지자 행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KAIST와 울산과기원(UNIST) 등 이공계생들은 서명운동과 기자회견 등 대응방안을 모색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날 KAIST 학부 총학생회는 전문연구요원 폐지 방침과 관련해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UNIST 총학생회와 함께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는 19일에는 국회 정론관에서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와 협조해 입장발표를 한다는 계획이다.

전문연구요원 병역특례는 병무청이 선정한 기관에서 석사 이상 학위를 갖고 있는 자가 연구개발(R&D)을 하며 병역을 이행하는 제도다.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시행한 이 제도는 그 동안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대와 KAIST, 포스텍을 비롯한 국내 이공계 대학 교수는 물론 정부출연연구소와 민간기업에서 R&D를 수행하는 박사급 인력의 상당수가 이 제도를 통해 경력 단절 없이 연구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국방부는 최근 출생률 저하로 병력 자원이 줄어드는 데다 개인의 학업을 병역 이행으로 인정하는 것은 특혜라며 폐지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특혜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지금보다 더 국방이 우선시 됐던 1970년대에 시작된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며 소총을 들고 있어야만 나라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제도를 통해 국방 과학기술력도 강화됐다”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제도를 특혜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계획이 보도되자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비롯한 SNS는 물론 서울대, KAIST, 포스텍 등 주요 대학 커뮤니티에는 폐지안을 비판하는 글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한국 과학기술에 대한 사망선고다”, 이공계 대학원 붕괴가 시작됐다”, 서카포(서울대, KAIST, 포스텍) 학생들, 답은 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입니다” 등의 글이 수백건씩 올라왔다.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KAIST와 포스텍, 서울대 등의 국내 대학이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고 우수 인재를 양성하는데 큰 도움을 준 제도를 단순히 병역 자원이 줄었다고 폐지를 논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과학기술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무색하게도 이와 반대되는 정책을 부처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용홍택 미래창조과학부 미래인재정책국장은 이 제도는 특혜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는 점을 국방부에 전달하고 있다”며 교육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청 등도 모두 존치의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병역특례제도가 폐지된다면 가뜩이나 해외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인력 유출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올해 1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발표한 ‘2015년 이공계 인력의 국내외 유·출입 수지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 머물고 있는 이공계 박사 해외 인력 유출자는 2010년 8080명에서 2013년 8931명으로 늘어났다. 조사를 시작한 2006년 5396명에서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금종해 고등과학원장은 이미 신진과학자의 수가 줄면서 현재 고등과학원 연구원의 한국인과 외국인 비율이 7대 3 정도”라며 전문연구요원제가 폐지된다면 2년 안에 이 비율이 5대 5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도 우수 인력이 한국에서 남아 연구를 하면서 정부출연연구소와 한국 대학의 경쟁력 강화에 큰 기여를 한 제도”라며 일방적인 폐지는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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