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욕심`에 단기실적만 신경쓰는 보험사 CEO

보험업계가 2020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 예정에 따라 혼란을 겪고 있지만 정작 이를 준비해야할 보험사 CEO들은 새 회계기준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고 있다. 대부분 보험사 CEO들이 1~2년안에 교체가 예정이기 때문에 이들이 연임을 위해 단기 실적개선에만 치중하면서 필요한 ‘자본확충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5개 생명보험사중 16개 기업의 CEO들이 내년안에 임기가 끝난다. 최근 회사가 매각된 알리안츠생명을 포함할 경우 17개로 늘어날 수 있고 임기만료 기간을 2018년까지로 확대하면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차태진 AIA생명 대표를 제외하고는 모두 임기가 만료된다. 그나마 기업 오너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2017년3월 임기만료) 정도가 연임이 예상돼 2020년에도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손해보험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10개 주요 손해보험사 CEO 중 2018년까지 임기를 마치는 CEO는 8명이나 된다. 이철영·박찬종 현대해상화재 공동대표, 김동주 MG손해보험 대표는 2019년 3~4월께 임기가 만료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보험사들이 그룹 계열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정해진 임기를 제대로 채울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새 회계기준이 시행되면 부채의 시가 평가로 인해 수십조원에서 많게는 100조원 안팎의 자금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는 예상들이 나오고 있어 지금부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보험사들의 부채는 대부분 보험 계약자들에게 돌려줘야할 보험금이며 이를 시가 평가할 경우 보험사들이 보장한 금리와 현재 금리와의 차이 만큼이 매년 변동하게 된다. 최근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 되면서 고금리 보장 상품을 많이 팔았던 보험사들은 부채가 급증하게 되며 이를 위한 준비금을 쌓아둬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이를 소홀히 할 경우 보험사의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져 보험 가입자들의 대거 이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모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CEO들이 연임을 위해 당장 눈앞의 성과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며 2020년에 CEO 자리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새 회계기준 도입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금감원이 실제로 지난 3월 각 보험사들로부터 IFRS4 2단계 준비 계획을 받아봤지만 영향분석과 향후 자금 마련 방안 등을 제대로 제출한 곳은 단 한곳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새회계기준 도입시기 연기를 당국에 요청하고 있을 뿐이다.
한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최근 매각된 알리안츠생명이나 매각을 앞둔 ING생명, 그리고 매각설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외국계 생명보험사들의 경우는 생존을 위해 일단 향후 몇년간 조직 정비와 인수·합병 작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IFRS4 2단계 도입을 위한 준비금 확충에 신경쓸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사들은 준비금을 확충하기 위한 노력도 부족하지만 오히려 역마진을 초래하는 저축성 보험을 많이 판매해 눈총을 받고 있다. 더욱이 보험영업을 통한 역마진을 만회하기 위해 자산운용부문에 집중해 단기투자수익을 늘리는 데 열중이다. 그결과 보험영업을 통해서는 적자가 나고 있지만 투자수익에서는 대규모 흑자를 내 전체적으로 흑자로 포장해놓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장기적으론 투자수익을 통해 흑자를 지속적으로 낼수 없다는 점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영업부문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단기적인 투자수익만 내다가는 회사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물론 상당수 보험사들이 최근 새 회계기준 도입 준비를 위해 TF팀이나 전담 부서를 마련해 준비작업을 해오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준비 사항이 매우 미흡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주주나 최고 경영진들이 책임감을 갖고 준비를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국제회계기준원(IASB) 홈페이지에서 대략적인 시행 계획을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사들은 제대로된 대책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며 오죽하면 최근 진웅섭 금감원장이 직접 나서서 보험사 CEO들과의 간담회를 열며 준비사항을 체크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지난 9일 생명보험사 대표들을 만나 직접 새 회계기준 준비 사항을 점검한데 이어 17일에는 손해보험사 대표들을 만나 현황을 파악할 예정이다.
다른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임기 만료를 앞둔 CEO들이 얼만큼 위기 의식을 갖고 준비할수 있을지, 또 준비에 나선다고 해도 얼만큼 영속성이 있을지 우려되는게 사실”이라며 보험사 경영진들에 대한 고과 평가가 단기 실적 보다는 리스크 관리 부분에 좀더 초점이 맞춰져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