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선생님의 3000통 편지…`그건 사랑 또 사랑`
입력 2016-05-15 10:53  | 수정 2016-05-16 08:03

40여년간의 교직생활동안 받은 편지들 모두 제 가슴속에 사랑으로 남아 숨쉬고 있습니다”
박종천 선생님(66)은 제자들이 한 자, 한 자 눌러쓴 편지를 두 손으로 쓸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11년 박 선생님은 39년6개월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동안 제자들과 나눈 편지만 3000여통이 넘었다. 그 추웠던 70~80년대의 겨울밤에 아이들은 박 선생님에게 편지를 올렸다.
당시에는 모두가 가난했다.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자포자기한 아이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다. 아이들은 답답할 때마다 편지를 썼다. 때론 웃음이 났고 때론 눈물이 흘렀다. 박 선생님은 편지를 받을 때마다 답장을 보냈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한 장의 편지를 쓰기 위해 수십번을 썼다 지웠다.
교직생활 내내 서재 한 켠에 모아둔 편지들은 산문집 3권으로 세상에 나왔다. 산문집은 ‘고뇌하라 그리고 헌신하라라고 이름 붙였다. 아이들이 본인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사색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박 선생님은 새벽에 일찍 눈이 떠지는 날에는 제자들이 무척 보고싶어질때가 있다고 했다. 그럴때마다 그는 구석에 놓인 편지들을 집어올렸다. 그리고 허한 마음이 다시 풀어질 때까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편지를 3000통이나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편지를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교직에 임용됐던 70~80년대에는 학생들과 마땅히 소통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방학이 돼 집에 돌아가는 학생들은 선생님께 안부 편지를 드리는 것이 일종의 예의였죠. 특히 겨울방학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주고받았고, 스승의 날에는 축전 등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편지를 받으면 꼭 답장을 썼습니다. 한 번 답장을 쓰고난 뒤로는 제자들과 5년, 10년, 20년간 편지를 계속 주고 받게 됐죠. 그 편지가 세어보니 3000여통은 된 듯 합니다.
-편지들을 모아 산문집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학창시절을 되돌아봐도 선생님께 편지를 드린 기억이 많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제자들도 저에게 편지를 보낼 때 고민을 많이 했을 겁니다.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가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선생님께 한 자, 한 자 눌러썼을 겁니다. 편지를 읽다 보면 아이들의 정성에 가슴 찡한 경우가 많았죠. 그 소중한 자산을 모아 산문집을 내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이후 제자들의 편지와 제 답장을 모아서 두 차례 산문집을 냈죠. 당시 받았던 3000여통의 편지들은 모두 박스에 담아 보관하고 있답니다.
-제자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으신가요?
▶지난 40여년간 저를 거쳐간 제자들만 어림잡아 1000여명은 될겁니다. 이름을 불러보고픈 제자들도 정말 많지요. 그 중에도 1982년도에 제가 3학년 담임을 맡던 시절의 강순애 제자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보통 3월 초에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을 불러놓고 상담을 합니다. 순애는 2학년 1학기까지는 정말 성적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2학년 2학기부터 성적이 뚝 떨어진거에요. 알고보니 넉넉치 않은 형편에 대학에 갈 수 있는 처지가 안된다고 생각하고 자포자기했던거죠. 알고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구멍가게를 운영하셨어요. 순애는 하교 후에 그 가게를 운영해야 했지요. 순애는 정말 특별한 학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중학교에 가지 못했을 때는 YWCA에서 야학을 하며 고입 검정고시를 통과했지요. 어렵게 들어온 고등학교에서 꿈을 놓아버린 순애에게 저는 용기를 북돋아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늘 지금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행운이 찾아오게 될 거다. 공부를 열심히 하자”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자가 고등학교만 나온 것도 감지덕지해야한다고 말씀하시던 순애의 할아버지를 설득하는 것도 일이었죠. 각고의 노력 끝에 순애는 청주교육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순애가 대학 학비가 없어 고민할 때는 입학금과 등록금 일부를 졸업할때까지 지원하기도 했지요. 결국 순애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을 때 내 자녀가 선생님이 된 것처럼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산문집 이름인 ‘고뇌하라 그리고 헌신하라는 무슨 뜻인가요?
▶아마 80년대 초 쯤이었을겁니다. 졸업앨범에 들어갈 메시지가 필요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의미있는 뜻을 함축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죠. 고민하던 끝에 ‘고뇌하라 그리고 헌신하라는 제 나름의 좌우명을 만들었습니다. 고뇌라는 의미는 정신적, 이성적인 근심과 괴로움의 감정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고뇌들이 있습니다. 인생과 죽음에 대한 고뇌, 이상과 사명에 대한 고뇌, 젊음과 사랑에 대한 고뇌는 모두 한 번쯤 거칠 수밖에 없죠. 제자들이 밤깊은 고요한 시간에 본인의 삶을 조명해보면 좋겠다는 뜻에서 ‘고뇌하라라는 말을 선정하게 됐습니다.

‘헌신하라는 것은 어떤 일에 몰두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입니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루소는 ‘일생을 진리에 바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본인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면서 내가 해야할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헌신입니다. 자기 인생에 헌신하라는 의미로 제자들이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진리를 탐구하거나 도덕을 실천하거나 예술활동을 하는 것과 같은 인생의 여러 분야에서 자기의 역량을 발휘하고 노력을 다하는 삶의 자세가 바로 헌신의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참 스승이라면 제자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첫째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치와 덕목을 심어주는 멘토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최근에 우리가 흔히 목격하는 자녀학대, 존속살인 등의 문제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가 아니죠. 학생들에게 인생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보통 우리는 이같은 교육을 ‘인성교육이라고 합니다. 옳고 그름이 무엇이고, 선악이 무엇이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학생들의 미래의 꿈과 희망을 북돋아주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제가 제자들에게 부단히 공부하라고 강조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교사의 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환경에 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필요했죠. 그 역할을 교사가 해줘야 합니다. 끝내 제자가 오랜시간 소망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스승으로서 큰 기쁨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는 제자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이고, 가치있는 인생인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인생은 나라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또 남과 나누어야겠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사랑을 베푸는 마음이 바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다소 뻔하게 느껴지더라도 이같은 가치가 정말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는 중·고등학생 제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긍정적인 생활 자세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답고, 인생은 가치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세요. 공부는 꿈을 이루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책상머리 공부도 공부고, 밖에서 배우는 공부도 공부입니다. 또 여러분들이 가진 미래의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부단히 노력해서 꼭 성취하기 바랍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애국, 효도, 봉사, 나눔, 자애 등의 실천은 바로 아름답고 가치있는 인생을 만드는 가장 필요한 요소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성공적이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홍성용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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