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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구의 탐구생활] 이성민, 눈물 마르지 않는 피에로
입력 2016-05-02 15:41  | 수정 2016-05-02 16:09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배우는 흔히 어릿광대인 '피에로'에 비유된다. 16세기 이탈리아 희극에서 유래한 이 캐릭터는 세대와 국가를 거치면서 변화를 겪었다. 흰 얼굴에 웃음 띤 미소, 그리고 눈물이 찍혀있는 분장은 기쁨과 슬픔을 한 얼굴에 담고 있어 더 애처롭다. 피에로는 상반된 얼굴로 관객들을 웃고 울린다는 점에서 곧잘 배우와 동의어로 쓰인다.
이성민은 tvN 금토드라마 '기억'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변호사 박태석을 연기한다. 그는 나은선(박진희 분) 사이에서 낳은 아들 동우가 뺑소니 사고로 목숨을 잃자, 슬픈 기억을 지우기 위해 권력자의 편에 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일을 해결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 박태석은 점차 기억을 잃어갈수록 동우를 지켜주지 못했던 후회와 가족애를 깨달았다. 두뇌는 점차 기능을 잃었지만, 심장은 더욱 뜨거워진 것이다. 그는 뺑소니 사건 범인이 자신이 몸담은 태선로펌의 대표변호사 이찬무(전노민)의 아들 이승호(여회현)이라는 것을 알고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
'기억'의 중심에는 단연 이성민이 있다. '돈 냄새'에 반응하는 변호사부터 기억을 잃어간 뒤 다시 '인간 냄새'가 나는 변호사를 한 배역에서 소화했다. 신영진(이기우) 한국그룹 부사장의 요구를 처리하면서도 핏대를 세우며 그에게 반격을 하고, 힘없는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다독였다.

박태석에게 '변호사'라는 설정을 빼면, 죽은 아들을 향한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버지'가 있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사랑하는 이에게 흘리는 피에로의 눈물은 이 작품에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대신한다.
박태석의 오해와 무관심 때문에 희망슈퍼살인사건 범인으로 내몰린 범인이 피에로 분장을 하고 다시 그의 기억 속에 등장한 것은 아들의 죽음 이후 어릿광대처럼 살아온 그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박태석은 민얼굴에 '변호사'라는 분장을 하고 아들의 죽음을 잊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것이다.
"내게 남은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이성민은 절박하게 눈물 흘렸다. 꺼져가는 기억 속에서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 애썼다. 이 과정에서 차츰 진실을 알아가는 박태석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박태석의 주변 인물들이 그가 알츠하이머병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갈수록 그 진폭은 컸다. 어머니인 김순희(반효정)은 마음속으로 아들을 안타까워하지만, 말없이 고개만 떨굴 뿐이다. 박태석, 동우, 김순희라는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어머니 관계. 꺼져가는 기억과 이를 붙잡기 위한 이들의 몸부림은 화면 속을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에 그대로 꽂혔다.
이성민은 '기억'에 대해 "기억은 내게 있어 가장 많이 눈물을 흘렸던 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다. 박태석과 주변인물을 통해 시청자분들 역시 인생을 돌이켜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눈물 흘렸고, 이 감정들을 전달하기 위해 온힘을 다했다.
'골든 타임' '미생' 등에서 각 캐릭터에 잘 달라붙는 대사와 동작으로 몰입도를 높였던 이성민은 이번 작품에서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도 장면마다 밀도 높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묵직한 연기를 보여주는 그는 '감정의 극과 극을 내달리는' 피에로와 가장 어울리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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