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의 ‘한국 핵무장 용인 발언으로 촉발된 ‘한국 핵무장 논란이 미국 워싱턴DC에서 확산되고 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前) 미국 북핵특사는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북한이 핵 능력을 진전시키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과 일본내에서 일고 있는 핵무장 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갈루치 전 특사는북한은 4번이나 핵실험을 했는데 또 추가 핵실험을 준비 중”이라며 이런 상황은 핵무기를 갖겠다는 한국과 일본의 논의에 정당성을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19일에는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가 연방의회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스스로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핵무장을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고 워싱턴 정가에서 금기시되는 핵무장론을 언급했다. 일단 갈루치 전특사와 브룩스 지명자의 발언은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지 않도록 미국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워싱턴DC 정가에서 핵우산 철수, 핵무장 용인 등이 이례적으로 빈번하게 거론되는 것은 밑바닥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핵우산 제공 중단 논의는 미군 비용절감 차원에서 촉발됐다. 미국 정부 재정악화때문에 국방예산 절감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비용이 들어가는 핵우산 제공을 중단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한국과 일본에게 자체적으로 안보를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게 논의의 발단이다. ‘부자 나라 한국에 미국이 안보를 대신해 줄 이유가 없다는 트럼프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일각에서 핵우산 전쟁억지력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핵우산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수단이라고 믿어왔지만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미국 우방인 일본·대만·필리핀 등을 겨냥해 위협을 가하고 있고 러시아는 미국이 안전을 보장했던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와 관련해 더그 밴도우 케이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세상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며 핵우산이 전쟁을 억지한다는 수십년된 믿음은 이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북한이 4차례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로 핵 능력을 진전시키면서 핵우산 핵 확산 억지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파리기후변화협상 서명식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찾은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 뿐”이라고 밝힌 것처럼 미국 핵우산이 핵비확산을 보장하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핵 확산을 초래했다는 일부 비판에도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리 외무상은 지금도 30만명의 방대한 무력과 미국 핵전략 자산들이 동원된 사상 최대 규모의 핵전쟁 연습이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대화도 해 보고, 국제법에 의한 노력도 해 봤지만 모두 수포가 됐다”며 남은 것은 오직 하나,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뿐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이 핵 능력을 꾸준히 진전시키자 한국 내에서도 핵무기 보유론이 불거지고 있다. 올해 초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에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잠정 탈퇴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연구전략실장은 북한 비핵화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는 것이 확인됐다”며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실(失)보다 득(得)이 많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이와 관련해 미국이 북한의 핵능력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는 판단에 따라 한국 내에서 자체 핵무기 확보 논쟁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핵우산 철수와 한국 핵보유 용인 논의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핵우산 제공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는 큰 틀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미국 외교 기본전제는 핵무기 확산을 막는 것으로 지난 70년간 변함이 없었다”며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도 흔들림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 역시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는 순간부터 ‘핵의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하는 핵비확산조약(NPT)를 탈퇴하게 되고 국제사회로부터 핵물질 수입과 핵기술 사용 등에 제재를 받게 된다. 정부 관계자가 에너지원의 25% 이상을 원전에 의존하고 있고, 원전을 수출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핵무기 보유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논의”라고 일축하는 이유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