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제빵왕' 허영인 회장, 제빵 역사를 새로 쓰다
입력 2016-04-19 19:16 
사진 = SPC그룹
"서양의 효모인 이스트를 대체할 토종 천연 효모를 찾아라."

뚝심과 열정으로 업계 1위를 지켜온 '제빵왕' 허영인 SPC그룹 회장(67)은 2005년 연구진에 특명을 내렸습니다. 허 회장 지시 후 곧바로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가 설립돼 기초연구가 시작됐습니다. 글로벌 베이커리와 경쟁하기 위한 승부수였습니다. 연구진은 토종 미생물자원을 채취하기 위해 청풍호수(충주)와 금수산(단양), 옥순봉(제천), 송계계곡(제천), 지리산, 설악산, 강화도, 월출산, 팔공산, 갑사 등 전국 청정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한국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식품 소재들을 찾아내기 위해 전국의 5일장도 찾아다녔습니다.

효모는 당분이나 영양분, 물을 함유한 밀가루와 섞이면 알코올 발효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빵을 부풀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과 많은 투자가 필요해 국내에선 관련 연구가 부족했습니다. 특히 미생물 분야인 천연 효모의 생화학적·유전학적 특성을 규명하는 기초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SPC그룹이 160억원을 투자하고 연구에 매달렸지만 좀처럼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허 회장은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끈기를 가지라"며 연구진을 격려했습니다. 수억 원대 실험 장비가 필요하다고 보고할 때마다 모두 허락했습니다. 단 한 번도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2012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이 합류하면서 드디어 연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3년여의 강행군 끝에 지난해 한국 전통 누룩에서 발견한 천연 효모 'SPC-SNU(서울대) 70-1'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19일 상용화 성공을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연구에 착수한 지 11년 만이었습니다.

이 효모를 적용한 빵 27종은 지난 13일부터 전국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스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천연 효모를 이용해 빵을 만든 것은 국내 처음입니다. 한국 제빵 역사를 다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효모는 발효 냄새가 적을 뿐만 아니라 다른 원료의 맛을 살려준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입니다. 담백한 풍미와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며 빵의 노화를 지연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제빵왕 허 회장도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식감이 매우 좋고 신맛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대부분의 국내 제빵 회사들은 인위적으로 효모를 육종시켜 배양한 이스트에 의지해왔습니다. 국내에 수입되는 효모와 효소제, 유산균 수입 규모는 4400만달러(약 500억원)로, SPC그룹의 이스트 사용량은 연간 약 3000t(70억원)에 달했습니다.


SPC그룹은 토종 효모빵 출시로 'SPC만의 빵맛'을 갖게 되면서 세계 시장 공략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해외 가맹사업을 통해 매장이 크게 늘어나고 효모 수출까지 성사되면 'K-베이커리' 경제 효과가 훨씬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세계 효모 시장 규모는 3조2000억원으로 2020년에는 4조9000억원을 내다봅니다.

SPC그룹은 천연 효모 'SPC-SNU(서울대) 70-1'을 지난해 9월 국내에 특허 등록을 하고 국제 특허 출원을 완료했습니다. 프랑스와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지정국가 등록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천연효모 개발은 허 회장의 집념과 열정의 산물입니다. 1949년 고 허창성 상미당(현 삼립식품) 창업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빵 냄새를 맡고 자랐습니다. '모태신앙'처럼 여겨온 제빵사업에 헌신해온 그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공장과 매장을 누비는 현장 경영인입니다.

1981년 미국제빵학교(AIB)에서 제빵 기술을 익혔으며 지금도 반죽부터 발효 상태, 식감 등을 체크합니다. 식빵을 툭 쳐보기만 해도 구운 시간을 알아내고 바게트 빵을 쪼갠 후 오븐 윗불과 아랫불 온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제빵 원천 기술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진 허 회장은 연구개발비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SPC그룹과 서울대 연구진은 11년 동안 토종 미생물 1만여 개를 분석한 끝에 천연효모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발효 소재인 누룩에서 서양 음식인 빵을 만드는 데 적합한 미생물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게 전문가와 학계의 평가입니다. 연구에 참여한 서진호 서울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이번 제빵용 토종 천연효모의 발굴은 해운대 백사장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아낸 것과 같다"며 "고유의 발효 미생물 종균이 거의 없는 국내 발효식품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쾌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효모를 적용한 파리바게뜨 제품은 쫄깃한 천연효모빵, 건포도 천연효모빵, 연유크림브레드, 어니언크림치즈 호두브레드 등 4종, 식빵 16종, 바게트 7종 등 총 27종입니다. 회사 측은 순차적으로 제품을 확대하고 삼립식품과 파리크라상 등 계열사에도 적용할 계획입니다.

허 회장은 "독자적인 토종 천연효모 기술로 만든 우리만의 빵 맛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SPC그룹은 국내 매장 6000여 개, 해외 200여 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액 4조7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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