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가습기 살균제 PB상품, 책임은 유통사? 제조사?
입력 2016-04-19 15:48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대형마트가 판 자체 브랜드(PB) 상품의 품질관리 책임 소재를 두고 제조·유통업체 간 책임 공방이 거세질 전망이다. PB 제품인 가습기 살균제의 제작·생산 단계에서 양측의 관여 정도를 따지는 일이 쉽지 않은데다 법적으로 PB상품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에 대해 책임 소재를 명시해 놓고 있지 않아서다.
◆ 유통업체 책임 통감, 그러나 ‘ODM 제품이어서…”
지난 18일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뒤늦게나마 보상대책을 발표하고 나섰다. 자사 PB상품과 연관된 영유아 및 임산부 사망자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점에서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다소 억울한 점이 있다고 유통업체들은 주장한다.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유통업체들의 ‘레시피에 따라 제조업체들이 만든 순수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조업체의 설계도에 따라 생산한 뒤 자신들은 유통판매에 주력한 ‘ODM(제조업자 설계생산방식) 제품이라는 게 유통업체들의 주장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는 대형마트 주력 분야인 식품, 의류 등 PB상품과 달리 ODM 제품에 가깝다”며 ODM 제품은 순수 OEM제품에 비해 유통업체들의 관여도가 적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즉 유통업체 이름을 달고 나온 제품이기는 하지만 유통업체가 요구한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제조업체의 레시피대로 만든 제품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전적으로 유통업체에 책임이 있다고 볼 순 없다는 입장.

또 다른 대형마트 측은 사망자가 발생한만큼 양측 다 책임을 피할 순 없겠지만 유해성을 예측하고도 제품을 만들고 팔았는지 책임 소재를 따지는 일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이 10여년 전부터 원료의 독성을 알았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된 상태여서 제조·유통업체 간 치열한 법적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 측에 따르면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를 만든 한 제조사는 지난 2003년 호주로 PHMG를 수출할 당시 호주 정부기관에 흡입독성에 관한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PHMG는 정부가 역학조사 결과 폐손상 유발 원인으로 지목한 가습기 살균제 재료다.
◆ 제조업체들 우리는 ‘을일 뿐…유통사와 수많은 피드백 주고받아”
이같은 대형마트의 주장에 대해 소비자시민단체를 비롯한 많은 제조사 측에서는 크게 반박한다. PB 상품 자체가 대기업 계열의 유통사들이 자사 이름을 걸고 판매하기 때문에 품질 관리 측면에서 유통업체의 책임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비자 권익보호단체인 컨슈머리서치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브랜드에 대한 기대치나 높은 신뢰도 때문에 PB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PB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자사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적극 홍보한 대형 유통업체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PB 상품 제작방식을 두고 ODM과 OEM으로 구분 짓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PB제품 자체가 제조사와 유통사가 함께 기획한 제품이어서 그 협업 과정을 일일이 나누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형마트 PB 상품을 제조한다는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제조업체의 관여도가 비교적 높은 ODM 제품이라 해도 하나의 PB제품이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피드백을 유통업체와 주고받는다”며 그래서 서로의 영역을 구분 짓기 참 모호하고, 양측의 조율을 통해 최종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제조업체 측은 사실 유통망을 가진 대형마트 앞에서 제조사들은 ‘을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판 사람 따로, 만든 사람 따로라기보다는 대형마트들의 최종 컨펌 후 PB상품이 나온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말했다.
현재 PB 상품을 둘러싼 소비자 피해에 대해 명확하게 책임 소재를 명시한 법적 조항은 없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제조물책임법 등에 따라 기본적으로 PB 상품을 판매하는 대형마트 등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안에 따라 제조사와 유통사 모두에 책임이 있을 순 있지만 소비자에게는 1차적으로 판매처인 유통사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판단에서다.
제조물책임법에 나온 ‘제조업자의 정의에는 제조물에 성명·상호·상표 또는 그 밖에 식별 가능한 기호 등을 사용해 자신을 제조물 제조·가공·수입업자로 표시하거나 오인하게 할 수 있는 표시를 한 업자가 포함돼 있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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