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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해준, 계속 악역이어도 괜찮아!
입력 2016-04-08 11:28 
영화 '4등', 비운의 천재 수영 코치 광수 役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배우 박해준(40)은 본인만의 연기 스타일이 있다. 정형화되지 않은 매력이 이 배우에게 관심 두게 한다. 기억 속 역할은 대부분 악한이었다.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와는 달리, 섬뜩함이 느껴졌다. 외로움과 쓸쓸함도 풍겼다. 선이 굵어서 그랬을까. 연극 무대에서 탄탄히 닦은 기본기도 영향을 준 게 틀림없다.
암암리에 여전히 자행되는 스포츠계 폭력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끄집어낸 영화 '4등'(감독 정지우) 속 박해준의 모습은 기존 그가 맡았던 악역과 비슷한 듯 다르다. 국가대표 천재 수영 선수였으나 폭력으로 인해 수영을 포기한 비운의 코치 광수(박해준). 1등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이항나)가 재능은 있지만 만년 4등인 아들 준호(유재상)에게 소개시켜주는 문제의 수영 코치다. 광수는 과거의 아픔이 있음에도 준호를 때리고 극한으로 몰아세운다. 경상도 사나이 박해준은 자연스럽게 현실감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박해준은 "감독님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내버려뒀다"며 "배우를 믿어주고 맡겨줘서 자연스럽게 연기가 나온 것 같다"고 웃었다. 본인의 성격에 잘 맞는 현장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그는 "간섭하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하는 스타일"이란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한데 어렸을 때 부모님한테도 매번 '나 좀 내버려두라'고 했어요. 다행히 다그치지 않으셨고, 절 인정해주셨어요. 믿어주셨다고 해야겠죠. 정말 감사해요. 그래서인지 전 후배들이 물어봐도 '알아서 네 마음대로 해'라고 해요.(웃음)"
4세 아이를 둔 아빠인 그는 "아이에게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둘 작정"이라고 했다. "물론 가끔은 걱정이 돼요. 와이프한테 '혹시 내가 욕심이 생기면 어쩌지?'라고 하거든요. 조금 뭔가를 잘하게 되면 욕심이 생길 것 같아요. 지금은 일단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지만요. 하하하."
'4등'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제안을 받은 작품이다.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동시에 웃음과 재미 등 상업적인 요소도 충분하고, 세련되게 연출되긴 했지만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지루하고 따분한, 메시지 주입 영화라는 편견이 들 수도 있다. 주인공 제안을 받았을 때 걱정은 되지 않았을까.
"묵직한 주제에 어려운 이야기라 나조차 편견을 가질까 고민하긴 했어요. 하지만 좋은 의도가 있는 작품이고, 어떤 교훈을 줘야겠다는 의도도 드러나 있지 않아 좋았어요. 작업환경도 좋아서 행복했고요. 흥미로운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된 것 같아 만족해요."
체벌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어렸을 때 체벌을 당했는데 잊고 살았어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 여전히 있는 게 안타깝죠. 왜 불편하고 불행한 일을 거듭해서 다음 세대로 넘기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고만고만하게 잘 살게 하면 좋을 텐데 그러는 건 쉽지 않겠죠?"
악역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조금 심오하다. 박해준은 "이상한 역을 많이 해도 의미 있게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며 "그 역할을 외로워 보이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역할로 풀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안타까운 역할도 많았고, 죽는 역할도 많았는데 내가 생각한 대로 표현을 많이 했어요. 사람들이 행복하고 즐거운 것에 열광하고 좋아할 것 같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마냥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가득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들의 이면에는 외로움과 공허함, 쓸쓸함도 공존하잖아요. 즐겁고 행복한 것과 공존하는 외롭고 공허하며 쓸쓸함을 공감할 수 있게 연기하는 것이죠. 그 부분을 매력적으로, 마음에 와 닿게 보이도록 하려고 노력해요. 그걸 좋아해주시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고요."
박해준이라는 배우의 연기에 반한 팬들은 나쁜 역할이 아닌 다른 역할로 나와주길 바라지 않겠냐고 하자 그는 "팬들을 고려해 역할을 선택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앞으로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하게 변할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팬들이 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무척 고마운 일"이라며 "팬들이 실망하면 죄송하지만, 내가 더 이상하게 변해도 팬들은 더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있다"고 웃었다. 역시 본인의 스타일이 확실한 배우다.
박해준의 설명을 들으니 외로움과 쓸쓸함을 정말 잘 표현하는 배우 같다. 그래서 그의 연기가 뇌리에 남아있고, 더 관심을 두게 했던 건 아닐까.
jeigu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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