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日 아베 `소비세율인상 연기 고려`는 장기집권용 카드
입력 2016-04-03 15:52 

아베 정권이 또다시 소비세율 인상 연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요미우리, 산케이 등 아베 정권에 우호적인 보수신문들은 벌써부터 자민당이 소비세율 인상 연기에 방점을 찍은듯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핵안보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을 찾은 아베 신조 총리도 1일(현지시간), 내년 4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 연기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치판단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연기할 경우)법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소비세율과 관련해 ‘법개정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지지통신은 아베 총리의 정치판단 발언은 (소비세율 인상 연기와 관련)진일보한것”이라며 자민당내에서 인상 재연기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가쓰오 대표도 총리가 결단하면 여당으로서 받아들일 것”이라고 강조, 소비세율 인상 재연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일본 정치권이 ‘소비세율 인상 연기와 중의원 해산, 그리고 참·중의원 더블선거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점차 빠져들고 있는 모양새다.
소비세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붙는 부가가치세(한국 10%)를 말한다. 일본 정부는 현재 8%인 소비세를 내년 4월부터 10%로 올리기로 했다. 공공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소비세를 올려 재정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당위론때문이다. 국가 재정보전을 위해 소비세 인상이 필요하다지만 국민들 입장에서 소비세 인상은 달갑지 않다. 그만큼 제품값이 올라가기때문이다. 이처럼 인기 없는 정책이기 때문에 표심에는 악재다. 정권 입장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인 셈이다.

실제로 소비세율 인상을 들고 나온 역대 일본 정권은 여지없이 몰락의 길을 걸었다. 지난 79년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가 소비세 도입을 주장하다 선거에 참패한뒤 10년간 소비세는 정치권 금기어였다. 자산거품이 정점을 찍었던 지난 89년 4월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가 처음으로 3% 소비세율 도입 결단을 내렸지만 2개월 후 낙마했다. 지난 97년 4월 소비세율을 5%로 올린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도 아시아 외환위기와 함께 추락했다.
이처럼 소비세율 추가인상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경기침체와 저출산·고령화 심화에 따른 사회보장비용 급증으로 국가재정은 빠른 속도로 악화됐다. 국가 부채가 사상최초로 1000조엔을 훌쩍 넘었고 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육박, 신용등급 강등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가파르게 늘어나는 재정적자에 깜짝 놀란 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지난 2012년 소비세율 8%(2014년 4월)·10%(2015년 10월) 단계 인상을 법제화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노다 정권 역시 붕괴돼 자민당 1당체제를 무너뜨린 민주당 시대가 3년으로 막을 내렸다. 소비세율 인상조치에 ‘정권의 무덤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 이유다.
2012년말 민주당 정권을 밀어내고 출범한 아베 정권은 민주당 전정권이 법제화한대로 2014년 4월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올렸다.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다소 살아나면서 소비세율 인상을 늦출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비세율 인상후 2분기(4~6월) GDP가 -7.3%(연율) 폭락한 데 이어 3분기에도 -1.6% 역성장, 아베노믹스 위기론이 불거졌다. 아베 정권도 소비세 인상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소비세 인상으로 경제활력이 뚝 떨어지자 2014년 11월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로 예정됐던 2차 소비세율(10%) 인상을 2017년 4월로 연기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러면서 소비세율 추가 인상을 연기한데 대해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명분으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단행했다. 소비세율 인상 연기는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고 아베 총리의 자민당은 공명당과 함께 중의원 의석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뒀다. 그리고 이듬해 아베 총리는 기다렸다는듯 안보법제 제·개정을 통해 일본을 전후 70년 만에 ‘전쟁가능한 나라로 탈바꿈시켰다. 소비세율 인상 연기를 지렛대 삼아 정권을 2018년까지 연장하고, 필생의 과업중 하나인 안보법제까지 통과시킨 셈이다.
이처럼 소비세율 인상 연기와 정치판 흔들기를 통해 정책목표를 달성한 아베총리가 또 한차례 내년 4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10% 인상시점을 늦추는 승부수를 던져 정계 재편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올해 1분기(1~3월) GDP성장률이 나오는 5월 G7 정상회의를 전후해 소비세율 인상 연기를 발표한뒤 증세 연기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을 구한다는 핑계로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실시하는 시나리오다.
이처럼 소비세율 인상 연기는 단순히 경제적인 목적외에 정치적인 의도를 담고 있다. 오는 7월 예정된 참의원 선거와 조기 해산한 중의원 선거가 함께 치러지면 일본 정계에 메가톤급 태풍이 불어닥치게 된다. 참·중의원 더블 선거를 실시하면 조직력이 약한 야당이 집권 자민당에 대항하기 힘들어진다. 아베 총리가 이런 상황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는 중·참의원에서 모두 개헌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선거에서 대승하면 아베 총리 임기도 2020년까지 연장된다. 현재 자민당 규정상 총리직 유지에 필수적인 당 총재직은 연임만 가능하다. 하지만 2020년 도쿄올림픽 성공을 위해 규정 개정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때문에 2020년까지 장기집권이 가능할수도 있다. 정권의 저주라는 소비세율이 아베총리에게는 장기집권을 위한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아베 총리의 이같은 정치 행보가 가능한 것은 국회 해산은 ‘총리 권한이자 정치적 무기라는 점을 인정하는 일본 정치문화때문이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의회 조기해산 명분이 있느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선거를 굳이 치러야 하느냐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소수의견에 불과하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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