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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례, 상생의 역설> 있지도 않는 골목상권 보호에 마트 규제…주민만 분통
입력 2016-03-28 16:31 
사진설명1: 위례신도시 아이파크1차 에비뉴(오른쪽 건물)에 임차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윤식 기자>

수만명이 거주하는 위례신도시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소형 점포 몇 곳과 중형 슈퍼 한 곳이 전부다. 지난해 12월 오픈 예정이던 위례 롯데슈퍼는 아직까지 인테리어 공사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세종·청라 등 신도시로 만들어진 곳들도 대형 마트 입점이 줄줄이 늦춰지며 갈등을 빚었다.
왜 그럴까. 사실 위례 같은 신도시는 새로 개발된 지역이어서 기존에 자리잡은 전통시장이 없다. 때문에 재래시장 반경 1km 안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입점할 수 없다는 유통산업발전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넘어야 할 관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상생법이다. 중소상인들이 대기업이 하는 사업에 대해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을 요청할 수 있게 해둔 이 법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는 이를 토대로 조정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위례 신도시의 경우 서울 송파강동슈퍼마켓조합이 ‘최소 2년간 롯데슈퍼의 입점 금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롯데슈퍼 관계자는 2년 후에 영업을 시작하라는 요구는 사실상 사업을 접으라는 것”이라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입점 계획이 무기한 연기됐다”고 전했다. 기존 상권이 전혀 없는 신도시에서 오히려 ‘규제의 역설이 더 두드러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위례 신도시 주민들은 믿을만하고 값싼 가격에 ‘장보기를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제한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위례신도시로 이사 온 주부 강모씨는 주변에 변변한 마트나 슈퍼가 없어 제대로 장 한번 보기 위해서는 차로 20분이나 걸려 가든파이브까지 가야 한다”며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위례 신도시 뿐 아니라 다른 신도시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적잖다. 신도시에서 ‘형성되지도 않은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대형 유통사들의 진출 자체가 차단당한다는 얘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상생의 취지는 좋지만 상생을 이유로 대기업의 진출을 무조건 막아 중소 슈퍼의 독점권을 보장해주는 것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취지가 현실에선 왜곡되고 있다. 사업조정 절차가 몽니 부리기로 변질되고 금전적 이익을 보려는 브로커들까지 기승을 부린다. 우선 대형 마트나 SSM과 중소상인들간 사업조정 과정에서 중소상인들이 입을 피해 규모를 산정하는 절차가 없다. 이로 인해 주변 중소상인이 SSM이 입점하면 반경 500m의 상인들은 매출이 70% 줄어든다”는 식의 추상적인 주장만 제기되는 실정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 사업조정 과정에서 중소상인들은 대형 유통회사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한다. 최소 몇년간 입점을 연기해야 한다”거나 라면 등 특정물품을 판매할 수 없다”는 식이다. 합의를 끌어내는 사업조정이 결렬되고 결국 심의 절차로 넘어가는 이유다.
지난 2014년 세종시 홈플러스의 입점 과정은 이런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당시 지역 슈퍼마켓 조합은 20억원의 상생기금 등 무리한 요구를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홈플러스 오픈은 계속 연기됐다. 세종시 주민들은 민원 사이트에 홈플러스 개장을 반대하는 일부 상인들이 너무 많은 금액을 보상 받으려는 것이 아니냐”며 조치원 홈플러스나 대전 이마트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빨리 대형마트를 개장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홈플러스는 세종시 지역 중소상인과의 사업조정 절차를 마무리하지 않은 채 ‘세종점 개점을 강행했다. 당시 홈플러스 측은 세종시 개점은 오래전에 공지됐고 부지도 오픈 5년 전에 매입했는데 불과 1년 전에 들어온 소수의 상인이 결성한 슈퍼조합이 개점을 막는 것은 부당하며 사실상 알박기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홈플러스는 50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대형 마트나 SSM이 입점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업조정 절차를 악용한 브로커들은 골칫거리다. 한 부동산개발업체 관계자는 대형 마트나 SSM이 신도시에 입점하기 위해 부지를 매입한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그 인근에 작은 슈퍼를 직접 차리거나 새로 오픈한 슈퍼 측과 접촉해 많은 보상금을 받아주겠냐며 수수료를 요구하는 브로커들이 전국 신도시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상 ‘알박기인 셈이다.
빵집 등 다른 사업과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최근 개발중인 신도시나 신상권은 동네 빵집 인근에도 파리바게트 등 프랜차이즈 제과점 입점을 허용했다. 신도시 등 아직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곳에서 골목상권 소상인과 프렌차이즈 업체의 상생을 위해 예외조항을 둔 것이다. 당시 동반성장위 측은 중기업종 보호를 악용한 ‘알박기를 차단하는 의미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형 마트나 SSM에는 예외조항 적용이 이뤄지지 않아 앞으로도 신도시가 생기거나 신상권이 만들어질 때마다 대기업과 중소상인간 갈등이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손일선 기자 /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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