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님이 텔레그램에 가입했습니다”
중견기업 영업직원인 A씨(36)는 최근 휴대전화에서 자주 이같은 메시지를 받는다.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지인이 텔레그램을 설치했다는 가입 소식 메시지다. 업무 특성상 저장된 전화번호가 2000개가 넘는 그는 최근 하루 평균 10건 안팎의 텔레그램 가입 소식을 받는다.
국회가 ‘테러방지법을 놓고 몸살을 겪은 최근 며칠 사이 온라인에서는 이른바 ‘텔레그램 망명 이 줄을 이었다. 앞서 2014년 검경의 카카오톡 사찰 논란 이후 빚어진 ‘1차 사이버 망명의 반복이다. 테러방지법 통과로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사찰 우려가 나오면서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등 국내 메신저 가입자들이 대거 텔레그램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를 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로 개인정보 보안이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경찰·검찰 등 사정기관 관계자, 고위 공무원들까지 텔레그램 망명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현직 중앙부처 공무원 B씨(41)는 알고 지내는 경찰 관계자나 청와대 직원들까지도 최근 잇달아 텔레그램에 가입하고 있다”고 귀띔하며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기간에는 사정기관에 근무하는 지인들의 텔레그램 가입이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모습도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달 초 텔레그램에 가입한 청와대 근무자는 테러방지법이 걱정이 돼서 가입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지인들이 텔레그램으로 쏠리면서 원활한 소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테러방지법의 진원지인 정치권의 망명 행렬도 줄을 잇는다. 야권에선 김현미·배재정·변재일·윤호중·이춘석 의원이, 새누리당에선 이인제·이재오·진영·권은희·이자스민 의원 등 비박계·비주류 인사들이 텔레그램 메신저를 설치했다.
법안 통과를 주도한 친박계 의원들의 보좌진과 일부 당직자들이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6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국무위원·정무특보를 지내다 여의도로 돌아간 친박계 의원 보좌관 여럿이 지난 3일 이후 잇따라 텔레그램을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측근 역시 최근 이 프로그램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테러방지법을 추진한 당 지도부·친박계 인사들의 보좌진들 중 상당수가 최근 텔레그램에 가입했다”며 우연의 일치로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4월 총선을 앞두고 주요 선거 정보나 전략 등의 유출을 피하려는 폐쇄적인 공유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같은 움직임이 국가정보원의 정보수집권이 강화된 것을 여권 스스로 자인하는 쪽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의도 증권가에는 이같은 텔레그램 망명이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돼 있었다. 지난 2014년부터 검찰과 금감원 등 금융당국이 여의도 증권가에 공공연히 퍼져 있는 불공정 행위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면서 ‘탈(脫) 카카오 바람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가 노출돼 수사당국에 덜미가 잡혔다는 소문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전범주 기자 / 김명환 기자 / 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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