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이 백화점보다 비싸다?
달러 대비 원화값이 1200원대 수준으로 급락하면서 국내 면세점들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후퇴하고 있다. 면세점과 백화점 간 가격차이가 크게 줄어들었고 일부 폼목의 경우 면세점 가격이 백화점 가격보다 높은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후 8년만이다. 이에 따라 국내 면세점들은 환율 보상 프로모션을 실시하는 등 가격경쟁력 회복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3일 면세점 업계에 따르면 일부 해외 명품이나 화장품들의 경우 면세점과 백화점간 가격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면세점은 세금감면 혜택이 있기 때문에 백화점 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된다. 하지만 달러 강세가 면세점의 발목을 잡았다. 면세점 제품의 가격은 기본적으로 미국 달러화로 표시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상승하고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반면 백화점은 고정된 원화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한다. 백화점과 면세점간 가격역전이 발생하는 이유다.
실제로 핸드백 브랜드 코치의 ‘스탠튼 캐리올 인 크로스그레인 레더 제품은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에서 76만1912원(614달러)에 팔려 백화점 가격(75만원) 보다 비싸다. 가격 차이가 사실상 거의 없는 제품들도 많다. 루이비통 튀렌(시티백·중간사이즈)의 경우 면세점 가격(원화 기준)은 194만8213원고 백화점 가격은 198만원이다. 사실상 가격 차이가 3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에르메스 버킨백 35 소가죽의 경우 면세점 가격은 1596만7901원(1만2868달러)으로 백화점 가격(1546만원)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특히 한국인이 국내 면세점을 이용했을 경우 면세물품이 600달러를 초과하는 경우 내야하는 세금까지 고려한다면 해외 명품의 면세점 가격이 사실상 백화점을 앞질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장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화장품 브랜드 맥(MAC)의 ‘레트로 매트 리퀴드 립컬러 가격은 3만1022원으로(25달러) 백화점 판매가 3만1000원을 살짝 넘어선다. 바비 브라운의 ‘롱웨어 젤 아이라이너는 3만4745원(28달러)으로 백화점 가격(3만5000원)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이같은 가격 역전현상이 나타나자 면세점들도 방어에 나섰다. 롯데면세점은 고객에게 10% 할인을 상시 제공해주는 ‘환율보상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VIP회원의 경우 자체 할인폭에 추가적으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이번 원화값 하락으로 지난 2월부터 코치(COACH), 에트로(ETRO) 등의 패션브랜드들이 추가 할인을 시작한 상태다.
면세업계에서 환율보상 프로모션을 실시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일본 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일본 면세점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자 국내 면세점들이 일본 면세점을 겨냥해 환율 보상 프로모션을 실시한 적은 있다”며 하지만 달러화 강세로 인해 자체적인 보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이때문에 해외 명품을 구매하려는 일부 소비자들은 면세점 대신 백화점 문을 두드리고 있다. 쇼핑업계 관계자는 명품 등의 가격이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역전되는 현상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8년만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2008년 당시에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화값이 폭락하면서 명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이 면세점 대신 가격이 더 낮은 백화점을 찾는 일이 발생했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현상 자체가 면세점의 리스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면세점은 그동안 중국인 관광객의 급증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만 알려졌지만 주변 경제여건에 따라 많은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원화값이 크게 올랐을 때는 면세점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가격 혜택을 많이 볼 수 있다”며 요즘처럼 원화값이 급락하면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율 보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입점 브랜드들과 가격 인하 협상을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손일선 기자 /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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