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서른’ 맞이한 극단 연희단거리패, 판을 흔드는 ‘깽판’을 시작하다
입력 2016-02-13 09:35 
[MBN스타 금빛나 기자] 1986년 7월, 부산 중구 광복동 용두산 아래의 허름한 건물이었던 가마골 소극장에서 태어난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어느덧 ‘서른의 나이를 먹었다. 민간 소극장 연극 정신과 방법론을 탐구하는 실험극단으로 출발한 연희단거리패는 이후 서울 게릴라극장, 밀양 연극촌을 중심으로 연극판을 키워 오더니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극단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만큼 서른의 잔칫상을 거하게 치를 법하건만, 크고 화려한 대극장이 아닌 작고 소박한 소극장으로 돌아왔다. 30주년을 맞이해 아예 푹 쉴까 했다”며 진담 섞인 농담을 던진 연희단 거리패의 이윤택 예술감독은 1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게릴라 소극장에서 열린 연희단 거리패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한 해 동안 걸어나갈 방향에 대해 자축의 의미가 아니다. 30주년이 한국 문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입장표명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 한국 연극의 위기, 담론은 사라지고 세론만이 남았다”


이 예술감독의 2015년은 무척이나 혹독했다. 작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 지원 심사 탈락 및 정치 검열 논란에 휘말렸던 것이다.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에 침묵해왔지만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입을 뗀 이 예술감독은 연극을 연극답지 못하게 하는 분명한 적이 누구인가에 대한 냉정한 입장을 가지게 됐다. 연극은 좌우도 아니고, 남북과도 상관이 없다. 더 이상 연극을 좌우의 이데올로기로 묶어 평가하지 말라 하고 싶다”고 작심한 듯 예술을 대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연극이 정치적으로 언급이 되며, 소극장은 왜 사라져야 하는지, 연극을 만드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정작 관객들은 볼만한 작품이 없다고 말하는지, 연극계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언급한 이 예술감독은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담론이 사라진 연극을 꼽았다. 본질이 아닌 세상의 잡다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예술감독은 이는 한국 연극이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한국 연극의 특징은 담론인데,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고 개인사적인 세론만 이야기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이와 더불어 이 예술감독은 정부 지원에 대한 경제적인 독립 또한 지지했다. 지원에 의존하고 살면서 연극계가 말랑말랑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주는 것은 받되, 주지 않는다면 안 받는 것”이라고 말한 이 예술감독은 다시 가난한 연극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예술감독은 연극이 콘텐츠, 브랜드화 되는 것 또한 문제로 꼽았다. 왜 예술이 미적인 것을 갖추기 전에 브랜드가 돼야 하는가”고 반문한 그는 연희단거리패의 30주년은 ‘문제를 삼는 유격적인 감수성을 되찾을 시점이다. 좌우, 남북, 지역감정과 같이 이분법으로 나누는 낡은 세계로부터 빠져나와 연극은 성장해야 한다. 연극인들이 연극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세속화, 대중제일주의적인 것이다. 세속적인 것에 대한 저항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탈피하기 위한 방책에 대해 이 예술감독은 공개적으로 말하지만 올해 꼭 쓰고 싶은 배우가 둘 있다. 바로 유인촌과 명계남이다. 그 둘을 꼭 세우겠다”며 둘을 무대 위에 올리는 것이 내 책무라고 생각하고, 해 낼 것이다. 물론 배우들에게 이에 대해 말한 적은 없다. 공개적으로 말하면 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 개판의 시대에는 깽판으로 간다”


이 예술감독은 오랜 시간동안 높은 예술적 경지에 오른 예술가들을 홀대하는 사회에 대한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비롯해 오태석, 이강백 등 거장들의 작품이 한국문화예술위의 지원 사업에서 줄줄이 탈락했던 것이다. 심지어 전위 연극으로 1970년대를 풍미한 기국서 연출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육체노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연출가들이 노동자고 됐고, 환자가 됐다”며 비통해 한 그은 오태석 연출이 초청도 아니고 극단 목화의 30주년 작품을 위해 대관신청을 했는데 떨어졌다. 더 이상 연극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싶다. 한국사회가 이렇게 야만적일 수 있는가, 우리가 얼마나 못났기에 젊은이들과 경쟁에서 떨어지는가에 대한 분노가 있다”고 토로했다.

우리들이 살아왔던 삶에 대한 자존심이다. 제대로 싸워보고 싶다”고 말한 이 예술감독은 싸움의 방법은 블랙유머로 가겠다. 20세기는 비정하게 싸우겠지만 21세기는 비정하게 싸울 수 없다.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개판에는 깽판으로 간다. 개판의 시대에는 깽판으로 가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깽판을 제대로 치겠다며 미소를 보인 이 예술감독은 이제부터 소극장에서부터 세속화에 대한 저항을 시작해야겠다. 관객들은 재밌으면서도 대단히 불편하고, 징그러운 봉변을 당하게 될 것이다. 거칠고 격조 있게 맞장을 쳐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깽판이라는 자극적인 표현해 대해 이 예술감독은 다양한 각도에서 깽판이다. 젊은 연극인들의 작품은 발칙하고 불온해야 하며, 저는 세련되면서도 기존의 형식을 벗어난 시도를 해야 한다. 진짜 깽판을 쳐서 파토를 내겠다는 것이 아닌 고사 직전의 연극 판을 흔들어서 숨을 쉬게 하자는 목표”라고 설명했다.

연극판에 대한 이 예술감독의 깽판의 출발은 오는 28일까지 대학로 게릴라 극장에서 공연되는 ‘방바닥 긁는 남자로부터이다. 이후 연희단거리패는 4월에는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 7월에는 원로작가 윤대성의 7년 만의 신작인 ‘첫사랑이 돌아온다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이자 배우인 김소희가 연출하는 우리극연구소의 ‘오이디푸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 연극 ‘햄릿,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 게임을 이윤택이 연출하는 ‘마지막 연극 등을 선보인다. 기국서 연출의 극단 76단, 박근형 연출의 극단 골목길과의 합동 공연도 예정돼 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MBN APP 다운로드